박지민은 그때 내게 더 가까워지면 되겠다는 말을 내뱉은 후 정말로 그걸 이뤄야 한다는 목표를 가진듯이 행동했다. 덕분에 나는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 중이다. 정국아, 정국아. 그는 수없이 내 이름을 불러댔다. 하루동안 그의 입에서 나오는 내 이름은 못해도 매번 열 번은 넘었을 거라 확신한다. 본래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사람들과 엮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어딜 가든 주변에서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과도한 관심을 보이면 반대쪽으로 슬금슬금 물러나는 습관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박지민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그가 앉아있는 쪽을 향해 힐끔 시선을 주었다.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는 칠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그의 앞머리를 흐트러놓아 눈이 반쯤 가려진다. 펜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리면서 수업을 경청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고개를 돌렸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싱긋 웃으며 입모양으로 무어라 말을 했다.
왁자지껄한 소음 사이에서 단어들이 날아다닌다. 3교시 쉬는시간이라면 응당 배고파질 시간이었다. 편의점을 털러 나간 애는 양 손 가득 제법 부피가 있어보이는 비닐봉지를 들고 왔다. 그걸 본 애들은 일시게 비닐봉지를 향해 달려갔는데 흡사 한 무리의 하이에나를 보는 듯 했다. 야 나는 메론빵! 나는 피자! 아 그거 내 꺼라고! 나는 저 사이에 낄 생각은 없어서 조금 떨어져서 관망하고 있었는데 지켜보고 있으려니 웃음이 났다. 이제는 교실 사이에 빵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가기 귀찮으니 던져 줄 사람~! 같은 소리에 나온 행동들이다. 그러는데 한 팔이 뻗어져 나와 공중을 가르고 날아온 빵을 잡아챘다.
"이거 좋아하지?"
박지민은 바스락거리는 빵을 건네며 덧붙였다. 이것만 사 먹는 거 봤어. 얘는 언제 그걸 다 보고 있었지.
"지민이는 뭐랄까, 정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지 않냐."
"완전."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법은 없다고 하는데 지민이는 예외 같아."
걜 싫어할 사람이 없을 거 같애. 바삭바삭 과자를 먹으며 나오는 주제는 박지민이다. 나도 동감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과자 한 봉지를 더 까던 김형우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날 짚었다. 그러고 보니 전정국, 너 처음에는 지민이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았냐? 김형우는 다른 애들과 휘휘 눈을 맞추며 말을 했다. 쌀쌀맞게 대하고, 그랬잖아. 맞아. 관심이 없는 거랑은 좀 달랐어. 그래서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했다? 내 어깨를 툭 치고서는 낄낄 웃으며 말을 이었다. 화내진 말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친하니까 말해주는 거잖냐. 별로 화낼 생각은 없었다. 나도 그때의 내가 과민반응을 했다고 반성하고 있었으므로. 지민이도 너 엄청 챙겨주고 그러는데, 설마 너 아직도 지민이 안 좋아하는 건 아니지? 사랑은 쌍방향이어야지. 농담섞인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래서 지금 네 생각은 어때? 내게 쏟아지는 시선들이 부담스럽다고 느끼며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박지민... 착하지."
"또?"
교실 안으로 들어오는 박지민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대답을 하면서 얼핏, 웃었던 것 같기도 했다.
"....좋아."
"날개가 다 자라면..."
"자라면?"
"여길 떠나야 해."
나는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바닥에 누워있는 박지민은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왜? 왜 떠나? 조금 조급해진 어투로 물었다. 바로 떠나야 해? 늦게 가면 거기서 뭐라고 꼽 줘? 내 말에 박지민은 피식 웃었다. 아냐... 그런 건 아냐. 그는 잠시간 입을 다물었다 도로 열었다.
"...당연히 기억하지, 그럼 기억을 못 하겠어? 이렇게나... 특별한데."
처음 듣는 소리에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다니. 어느 새 몸을 일으킨 박지민이랑 시선이 맞닿았다. 박지민은 내 손등 위에 제 손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금은 힘있게 잡아오는 손가락. 박지민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그를 잊는다고, 영원히?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처럼, 기억하지 못하게 된다고. 이 미소를, 이 온기를 없던 일로 만들어버린다고. 목이 콱 막혀왔다.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그런 건 싫었다. 그런 건 싫다. 나, 는... 손을 뒤집어 박지민의 손을 맞잡으면서 말했다.
"네가... 안 갔으면 좋겠어."
그 말을 해서는 안 됐는데......
타다닥. 검색창에 단어를 집어넣었다. '천사'. 클릭하니 정보들이 떴다. 신과 인간의 중개자, 선행을 권하고 악행은 피하게 만들어주는 자들. 올바른 일만 행하며 흔히들 미술에서 날개를 단 인간의 형상으로 그려진다, 라. 일어나 수첩을 꺼내들어 도서관으로 향했다. 해당 카테고리에 가서 소설이든 비문학이든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답은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 남은 것은?
"쏘리."
저번에 지민이한테 한 소리 들어서. 예? 나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아~ 얼마나 쪼아댔는지 몰라. 괜히 한 번 더 오지랖 부렸다가 단명하는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더 이상은 안 알려주려고, 패쓰. 잘 가세요 전정국 군! 그리고 자비없게 보건실 문이 닫히려는 찰나 발 하나를 문 틈으로 들이밀었다. 놀란 보건이 재빨리 문을 도로 열어 나를 쳐다보자 나는 약간 눈에 살기를 담고 말했다. 발과 맞바꾼 고통으로, 하나만, 콜?
발을 희생하고 나서 겨우 안으로 들어온 나는 아픈 곳을 문지르며 보건을 쳐다보았다. 넌 진짜 무식해서 이 험난한 세상 어찌 살아가려 그러니. 세상에 몸빵으로 안 되는 게 얼마나 많은데. 조언인지 비난인지 모를 말을 던진 보건의 말을 자르고 본론을 들이밀었다. 있잖아요, 천사는 날개 다 자라면 바로 여기 떠야 해요? 왜요? 막 위에서 꼽 줘요? 왜 이렇게 빈둥대다 왔냐구? 불이익 주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와다다 질문을 던졌는데 보건이 손을 들어 내 말을 가로막았다. 잠깐만, 뭐라고?
"천사는 날개 다 자라면 바로 여기 떠나야 하냐고요."
"그걸 걔가 말해줬다고?"
"네. 그리고 자기가 떠나면 모든 애들이 다 자기를 잊을 거랬어요."
그 말까지 하자 보건의 눈이 가라앉았다. 왜... 왜 그러세요? 보건은 커피를 휘휘 젓는것도 멈추고 생각에 잠겨있었다. 제가 물어서는 안 될 말이라도 물은 거예요? 그러자 눈을 든다. 지금 나한테 물은 거 똑같이 지민이한테도 물었었어? 왜 떠나야 하나고. 네. 그런데 지민이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 나한테 온 거지? 네.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다음으로 나온 말은 날 더욱 아리송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불이익을 당하거나 그런 건 아냐. 다만..... 대가가 있다, 라는 거지."
이상한 말이 돌았다. 질 나쁜 써클에 박지민이 가입했다고. 목격한 애의 말에 따르면 학원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뒷골목에서 담배를 피는 무리들을 봤다고 했다. 이 지대에서는 꽤 알려진 써클이었다. 미성년자 음주, 비행, 흡연, 금품 갈취 등등 여러 학교에 걸쳐져 있는 무리들이라고. 처음에는 박지민이 운 나쁘게 잘못 걸렸나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걸린 경우라면 응당 둘러싸여서 협박을 받고 있어야 했는데 박지민은 무리들처럼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마치, 친구들... 처럼 보였다고.
"니가 잘못 봤겠지."
"눈 좀 갈아끼워라."
내 입에서 나온 말들이 아니었다. 김형우가 말한 애의 등을 퍽 하고 쳤다. 야 지민이가 써클? 진짜 지나가던 개가 웃겠다. 걔가 거기를 왜 들어? 담배까지라니 아주 비슷한 사람을 착각한 거겠지. 동감하는 바였기에 나는 엉뚱한 소식을 가져온 애를 눈빛으로 조졌다. 임마 정신좀 붙들고 다녀. 핀잔을 준 김형우는 곧 지 자리로 돌아갔다. 말한 애도 억울하다는 듯 아 진짜였다니까! 를 외쳤으나 눈을 부라리는 행동에 아니었...나....? 를 말하고 있었다. 이런 말들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당하는 거다. 곧이어 심부름을 마친 박지민이 돌아오자 반 애들이 모두 그에게 달라붙었다. 무슨 일 있어? 박지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박지민에게 다가가는 김형우를 바라보았다.
"지민아, 그...."
"응?"
"어제.... 아니다."
"뭔데?"
"아니야, 아니야! 착각이었어."
더듬거리며 본론을 꺼내려던 김형우는 결국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선하디 선한 얼굴을 대면하니 더더욱 걔가 잘못 본 거겠거니 하고 결론지은 모양이었다. 박지민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김형우를 잠시동안 쳐다보다가 내게로 걸어왔다. 옆에 앉아 나를 보는 박지민을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매치를 시키려고 애를 썼다. 라이더 자켓을 입고 머리는 무스로 팍 세우고, 불량학생들과 골목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는 박지민. 존나 이상했다. 세상에는 자기랑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3명쯤 있다던데 어제 걔가 봤던 박지민이라는 애는 도플갱어가 아닐까.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그는 손가락으로 제 얼굴을 훔치며 물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말하던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어디서 희미한 핸드크림 향이 나고 있었다. 너무나도 희미해서 다 못 맡고 지나간 듯한데, 향기에 예민한 나는 그 향을 잡아낼 수 있었다. 땀냄새들이 가득한 교실에서 이런 향이라. 근원지는 가까운 듯했다.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렸는데 그 어디에서도 핸드크림을 쓰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 시선이 멈췄다.
"왜?"
박지민의 손에서. 담배향을 지우기 위한 수법으로 다른 향을 그 위에 덮는 방법이 있었다. 설마. 나는 박지민의 검지와 중지 사이를 보며 미간을 슬쩍 좁혔다. 괜한 의심이겠지. 나는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들어왔고 수업이 시작되자 나는 박지민과 써클을 연관짓는 일은 그만두었다. 열심히 필기하다가 그만 펜을 놓쳐서 책상 밑으로 굴러간 바람에 주우러 몸을 숙였는데, 그 때 나는 떨어져 있는 작은 깃털 하나를 발견했다. 새끼 손가락의 반밖에 오지 않는 작은 크기지만, 본 적이 있었다. 나는 수업에 집중하고 있는 박지민을 바라보았다.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종종 교실에서 떨어져 있는 깃털을 발견했다.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오늘 박지민은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날개와 관련된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시기도 성장 주기 즈음이었으니까. 오늘따라 너무 피곤해서 지름길로 가려는데 담배를 뻑뻑 피우는 애들이 있었다. 나는 눈을 찌푸리며 거길 통과하는 대화가 내 귀를 잡아끌었다. 박지민 진짜 쩔지 않냐. 응, 처음에 나는 왠 정신이 나간 애가 있나 했다. 생긴 건 천사가 따로 없는데 우리랑 같은 짓 하잖아. 맞장구치는 소리. 역시 사람은 겉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더니, 삥도 잘 뜯고. 주량도 존나 세.
"나 태어나서 소맥 그렇게 잘 마시는 사람 처음 봤어. 잔을 섞는 손목이, 진짜, 캬."
"오늘은 몇시까지 달리려나."
나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내가 들은 게 정말 사실인지 헷갈렸다. 물어봐야만 했다. 너네들이 말하는 박지민이 내가 아는 그 박지민이 맞는지, 그리고 맞다면 지금 어디 있는지.
아지트로 들어서자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막았다. 아니, 안개가 아니었다. 콜록콜록하며 소매로 코를 막았다. 모두 담배 연기들이었다.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무시하고서는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누군가가 제지하려 하자 주먹으로 쳐 버렸다. 억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가는 소리를 뒤로 하고 박지민을 찾았다. 시끄러운 노래속에 떠들썩한 웃음들이 섞여 난장판이었다. 잔을 서로 부딪히며 부어라 마셔라 하는 모습들도. 점점 손에 힘이 들어갔다. 어디 있는 거야, 하고 막 모퉁이를 돌았을 때 발이 멈췄다. 박지민이 거기에 있었다. 손에 긴 담배를 끼고.
".....박지민,"
그를 부르는 내 목소리는 작게 떨려나왔다. 걔네들한테 박지민이 여기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리고 정말로 찾으러 이 앞까지 왔을 때도 설마 설마 했다. 아니야, 아니겠지. 진짜 박지민이 여기 있을 리가 없겠어? 그런데, 정말 있었다. 박지민은 반 깐 머리를 하고, 가죽 라이더 자켓을 입고 있었으며 술 냄새까지 묻어나왔다. 손끝에서 타들어가는 붉은 불꽃은 독한 회색 연기를 피워낸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
"왜, 대체.....?"
그는 눈만 느릿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뜻밖의 인물을 만나 놀랐다거나 당황했다는 표정은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박지민은 손을 들어올려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를 똑바로 바라보면서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다음으로 숨을 천천히 내뱉자 담배 연기가 내 쪽으로 밀려왔다. 절로 기침이 나올 정도로 독한 냄새. 왜....? 왜. 올바르고 선한 일만 하다 떠나겠다는 듯이 행동했으면서, 왜. 왜.....? 이건, 나쁜 짓이잖아. 나는 멍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나쁜 짓,"
박지민은 내 말을 따라하며 '웃었다'. 맞아, 나쁜 짓이지.
"그래서 하는 거야."
나는 그날 아지트 밖으로 박지민을 데리고 나오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써클을 나오게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며, 너 이런 애 아니었지 않냐며 화를 내도 소용없었다. 박지민은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또한 학교 내의 그 어떤 인물에게도 박지민이 써클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말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누군가에게 알려주어 같이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또 강하게 아무에게도 말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민이 이중적인 생활을 한다면 애들이 욕할까, 해서. 그 결과 박지민은 전과 달리 나에게 살갑게 다가오지 않았다. 나와 거리를 뒀다. 갑자기 달라진 우리 사이를 눈치 챈 아이들은 화해를 시키려 부던히도 노력을 했지만 모두 헛수고로 돌아갔다. 다들 내게 먼저 박지민에게 사과하라 했다. 싸웠다면 백프로 내가 잘못을 했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걔가 잘못을 했을 리 없다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나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껴야만 했다. 박지민을 붙들고 차라리 이유라도 알려달라고 애원했다. 뭐가 널 갑자기 이런 행동을 하게 만든 거냐고. 그러나 박지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한껏 내리깔고 미안해, 라는 말을 반복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미안하면 하지 말라고! 사실은 너도 하기 싫잖아, ....사실은, 하기 싫잖아...! 그렇게 내뱉었을 때 돌아서 가던 박지민은 잠시 발을 멈췄다. 그러나 이내 움직여 계단을 내려갔다. 나는 제자리에 스르르 주저앉아 머리를 파묻었다. 미칠 것 같았다. 울고만 싶었다. 박지민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다. 그러나 이유는 몰랐다. 내가 무슨 말을 했기에,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러는 거냐고, 말이라도 해 달라고.... 제발..... 반으로 돌아가려 고개를 들었던 때였다. 나는 세 개나 떨어져 있는 깃털을 발견했다. 그 깃털들은 모두 전처럼 밝게 빛나고 있지는 않았다. 초라한 깃털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던 나는 주먹을 쥐어 깃털들을 구겼다. ....몰라, 이제 박지민 따위, 나도 몰라.
박지민이랑 말도 나누지 않은 지 며칠 째. 내 등을 콕콕 찌르는 시선이 따가웠다. 돌아보지 않아도 뻔했다. 분명히 시선의 주인공은 박지민을 거였다. 그렇게 거리를 두면서 뺀질나게 쳐다는 본다. 그러나 나는 무시하기로 했다. 박지민이 써클을 그만두었다고 말할 때까지 뒤돌아보지도, 말을 섞지도 않을 심산이었다. 싸늘하게 행동하자 박지민은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오늘 피씨방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가자."
"어... 미안, 오늘 선약이 있어서."
거절하는 목소리. 써클 모임이 있어서 거절하는 거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아쉽다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내게 날아왔다. 전정국 너는? 갈래?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일부러 박지민의 눈을 마주치며 신랄하게 뱉었다. 당연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갈 거야.
그렇게 아득바득 속으로만 칼을 갈며 피씨방에 왔는데 집중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내 편을 몇 번이나 죽일 뻔하고 임무도 실패하자 김형우는 오늘 컨디션 왜이렇게 꽝이야 너? 하며 물어왔다. 안그래도 학교서부터 내내 신경이 곤두서있던 나는 그 말에 성질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몰라!!!! 난 집에 갈거니까 잘 하던지 말던지!!"
"뭐야 내가 무슨 말을 했다고????"
어이없다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피씨방을 나왔다. 있는 힘껏 발을 쿵쿵 구르며 길을 걸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봤는데 그것조차 신경쓰지 않았다. 이게 다 박지민 때문이다. 씩씩거리며 걷던 나는 결국 제자리에 주저앉아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씨이....존나 빡쳐..... 박지민을 찾아서 한 대든 두 대든 치고 내가 죽이 되는 걔네가 밥이 되든 써클에 가서 한바탕 해야 이 기분이 가실 것 같았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나는 그들의 아지트를 향해 성큼성큼 발을 옮겼다. 우중충한 뒷골목에 다다르자 빙 둘러서 저들끼리 담배나 피고 있던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아무도 있지 않았다. 씨발 그럼 어디 가서 쟤네들을 찾지. 머리를 쓸어넘기며 이유모를 화를 삭이고 있을 때였다. 저벅저벅 들리는 발걸음 소리에 고개를 돌린 나는 그래도 굳었다. 이번에도, 박지민이었다. 저번에 봤던 불량한 복장을 그대로 하고.
"야."
".............."
"난 이제 안 말리기로 했어. 대신 행동하기로 했거든? 친구로써 네가 다른 길로 빠지는 걸 진짜 못 보겠어서 내린 결정이니까."
말을 하는데 박지민의 얼굴이 점점 구겨졌다. 나는 내 말에 그가 열받아하는 줄 알았다. 그러자 나도 화가 나서 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내가 죽이 되는 밥이 되는 오늘 너 거기서 끌어내겠다고 ㅆ....! 까지 하는데 갑자기 박지민이 풀썩 쓰러졌다. 그러더니 몸을 덜덜 떠는 거다. 아.....윽.... 숨이 넘어갈 듯한 소리를 내뱉는데 거기서 나는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박지민? 박지민, 박지민!!!!! 미친 듯이 달려간 나는 땅에 머리를 쳐박으려는 박지민을 붙들었다. 그는 가슴께를 쥐어뜯으며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입은 열려 있었으나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지민아, 지민아, 왜그래,"
"ㅇ.......ㄱ....."
"박지민!!!!"
혹시 날개의 성장이라면 몸에 꽉 달라붙은 자켓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해서 나는 재빨리 그의 자켓을 벗겼다. 그런데도 좀처럼 나아질 기세가 보이지 않았다. 박지민은 몸을 둥글게 말고 양 손으로 땅을 짚었다. 흙이 힘에 깊게 파여진다. 셔츠 위로 날개가 도드라졌는데, 어딘가 좀 이상했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박지민이 정신을 잃고 땅으로 철퍽 쓰러졌다. 박지민- !!!!!!! 큰 소리가 조용한 골목길을 울렸다.
박지민의 집에 처음 들어왔다. 그리고 박지민의 방도. 나는 눈을 감고 있는 그를 바라보다가 방 안을 다시 둘러보았다. 단순하고 깔끔했다. 방도 자기 같았다. 박지민이 정신을 잃고 쓰러진 직후 나는 핸드폰을 꺼내 보건 선생님인 김석진에게 연락했다. 나 혼자 옮기기에도 무리였을 뿐더러, 병원으로 데려가면 안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내 전화를 받고 달려온 보건은 박지민의 꼴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잊은 듯했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이 미친 새끼가. 보건이 왜 욕했는지는 이제 알게 되었다. 천사는 태생이 선하다. 악한 짓을 하면 날개의 힘을 잃어버리고, 병이 들게 된다. 보건은 박지민이 날개를 떼어버릴려고, 천사가 되지 않으려고 저 짓을 한 것 같다고 했다.
- 네가.... 안 갔으면 좋겠어.
그 때 내가 했던 말 때문이겠지. 조금만 더 했으면 진짜 죽을 뻔 했어. 날개를 잃어서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죽는 걸 몰랐나 봐. 보건은 짧은 시간동안 퀭해진 눈가를 쓸며 내게 말했다. 사실 제대로 알려주고, 허튼 짓 하지 않게 잘 감시하고 있으라고 당부한 뒤 집을 나갔다. 나는 평화롭게 잠이 든 것처럼 보이는 박지민을 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쁜 놈.
"....미안."
박지민의 입이 열렸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감겨있던 눈동자가 스르륵 뜨이곤 나를 바라봤다. 나는 울컥해서 쏘아붙였다. 미안하다고 말 할 거였으면 왜 그 짓을 했어? 너 앞으로는 절대 안 돼, 너 나쁜 짓 조금만 더 하면 죽는댔어. 그러니까 절대로 안 돼. 차라리 날 죽이고 가. 울상이 된 얼굴은 이상한 말까지 마구 던지고 있었다. 멍청아, 하려면 제대로 알고 하던가! 나쁜 짓 주구장창 하면 못된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 그냥 죽는다고! 박지민은 푸스스 웃으며 내 얼굴을 매만졌다.
"응 알겠어. 이제는 안 해."
"정말이지? 진짜지?"
"정말로. 약속할게."
그 부분에서 탁 하고 긴장이 풀렸다. 그제야 나는 조금 표정을 밝게 하고서는 핀잔을 주었다. 예전처럼 착한 일만 하고, 그렇게 해야 해. 옆에서 계속 지켜볼 거야. 천사를 감시하는 인간이라고. 박지민이 작게 큭큭 웃었다. 풀어지는 분위기에 나도 미소 지으며 그의 옆쪽에 머리를 댔다. 너 집 처음 와. 진짜 깔끔하게 산다. 혼자 사는 거야? 응. 가끔 안 외로워? 음.... 가끔은. 나는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럼 오늘은 안 외롭겠다. 왜? 오늘은 너 감시할 거거든. 같이 잘 거야, 여기서. 안 된다 해도 안 돼. 무조건 잘 거야. 박지민은 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같은 침대에 누워서 늦게까지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자리가 불편해서 뒤척이며 돌아누운 나는 잠시 눈을 떴다가 박지민이 없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물 마시러 갔나?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그러나 희미하게 들려오는 땡깡,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불안감이 갑자기 온몸을 휘몰아쳤다. 손을 뻗어 박지민이 누워있었던 자리를 만졌다. 방금 떠난 사람 같지 않게 온기는 다 식어 싸늘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거실로 나갔다. 거실에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땡깡, 소리가 들렸다. 미약하게 들리는 신음 소리도. 그걸 듣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쪽 끼쳐올랐다. 나는 거실을 지나 있는 방으로 미친듯이 달려갔다. 문은 닫혀 있었다. 박지민, 박지민!!! 문을 돌려도 절컥절컥하는 소리만 나고 돌아가질 않는다. 손이 달달 떨리고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문을 열 거, 가느다란 거. 가느랗고 긴 무언가....! 온 서랍장을 뒤져 귀이개를 찾은 나는 엎어질듯 달리며 문고리 옆에 난 작은 구멍에 그걸 끼워넣었다. 딸깍, 하고 잠금이 풀리는 소리가 나고 드디어 방 안의 모습이 나타났을 때, 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는 핏방울이 여러 군데 떨어져 있었다. 중간중간 떨어져 있는 깃털들은 붉은색이었다. 반쯤 너덜너덜해진 날개. 나가기 전에 내게 말해준 보건 선생의 말이 재생됐다.
- 날개가 다 자라면 왜 여기를 떠나야 하냐고 물었었지? 성장이 끝나 완전하게 되면 이 세상의 공기는 그들에게 독이 돼. 생명을 깎아먹지. 성장을 멈추게 하려고 그짓들을 해댄 박지민의 경우는 말이야, 만일이지만, 날개를 뜯으려 할 수도 있어. 잘 지켜봐야 돼, 정국아. 왜냐하면 날개를 뜯는다고 인간이 되지는 않거든. 그 대신 자격 박탈로 간주, 즉사하게 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박지민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박지민의 손에서 칼을 쳐냈다.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 뺨을 후려갈겼다. 짝. 세찬 소리와 함께 그의 얼굴이 돌아갔다.
"뭐하는 짓이야, 이러면 죽어...!!"
"이렇게 안..하면....곧 떠나야..해..."
떠듬떠듬 내뱉는 목소리. 거의 다... 자랐단 말야... 드러난 등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핏빛의 날개.
결국 견디지 못하고 울컥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는 박지민을 와락 끌어안았다. 맞닿은 가슴팍이 자해의 고통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정국아... 너랑 같이 있고 싶어. 울먹이는 목소리. 가기 싫어... 정국아, 제발. 박지민이 애원했다. 나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그 순간 환영이 스쳐지나갔다. 아니, 환영이 아니었다. 나는 예전에도 천사를 본 적이 있었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었다. 나를 향해서 웃어보이던 여자. 빛을 잃어가던 거대한 날개. 눈을 감자 먼지가 되어 사라지던 장면을 기억했다.
엄마였다.
나를 좀 더 보기 위해, 이 세계에 머물다 죽어버렸다.
"떠나...."
"........."
"떠나야 해 지민아..."
박지민을 껴안고 울먹였다. 나 너 좋아해, 그러니까 너 보낼 거야...
마음이 아렸다.
영화를 봤다. 박지민의 집에서였다. 모든 불을 다 끄고 어둡게 해서 티비만 보고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는 말이 없었다. 영화에 집중하느라 말이 없었단 뜻은 아니다. 사실 나는 영화보다는 티비 뒤로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살살 흔들리는 날개의 그림자. 물론 한 짝 뿐이다. 저번에 그렇게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던 날개는 회복되는 중이라. 그 날 피투성이가 되어 떠나기 싫다는 박지민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종래에는 목이 쉬기까지 했다. 진정된 후에 나는 붕대를 들고 와 너덜거리는 날개를 감았다. 다 감아주고, 피로 물든 날개를 붙잡고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뿌리가 시작되는 날갯죽지부터 그 끝까지.
"웃으면서 배웅해줄 거야?"
묻는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박지민은 티비에 눈을 고정한 상태로 묻고 있었다. 그래서 따라 고개를 돌렸다. 스크린 속에서는 여자가 죽으러 가는 남자를 웃으며 배웅해주고 있었다. 다시는 만나지 못하는 걸 아는데도, 웃는 얼굴로 기억하고 싶다는 남자의 부탁에 웃어준다. 나는 박지민의 의도가 뭔지 알았다. 제가 떠날 때, 웃으면서 배웅해줄 수 있느냐고. 대답은...
"아니."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벌써 12월이었다. 하루하루 떠날 날이 가까워지는 것을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아마, 박지민은 방학이 끝나기 전에 떠날 거다. 생각만 해도 눈가가 젖어들 것 같은데 어떻게 웃을 수 있지. 박지민이 떠나면...
"웃으면서 보내주면 보러 다시 올게."
"..........."
"약속."
박지민은 새끼손가락을 내밀며 웃고 있었다. 나는 내민 손가락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오면, 너 아프잖아. 천사에게는 이 세상의 공기가 독이 되는 걸 알고 있기에 제안을 들어줄 수 없다. 내 대답에 박지민의 미소가 옅어졌다. 슬픈 눈동자. 왜 떠나는 사람들은 남겨진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랄까. 남겨진 사람들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남은 사람들이 제 몫보다 더 행복하기를 바라는 떠난 사람들은 이기적이다. 그렇지만.
"돌아오지는 마."
"........"
"그래도...웃으면서 보내줄게."
새끼손가락에 손을 걸며 웃어보였다. 좋아하는 사람의 부탁이니까 들어주는 거겠지.
새하얀 눈이 아침부터 펑펑 내리던 날이었다. 영하 15도라고 했다. 밖에 나가면 얼어죽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하루종일 나가지 않았다. 집에서 티비를 보고 귤이나 까먹고 있었을 무렵이었다. 눈이 아프다 싶어서 시계를 보았더니 거의 자정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이만 자러 갈까 하는데 카톡이 왔다. 박지민에게서였다.
[ 잠깐 나올 수 있어? ]
고민했다. 그러나 이어진 문자에 주저하지 않고 옷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 마지막이어서 그래 ]
계단을 뛰어올라와 옥상 문을 열었을 때, 그는 난간 위에 올라가 있었다. 마지막, 이라는 말에 숨이 가쁘도록 뛰어온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발걸음을 늦췄다.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주변이 희미하게 보였다. 가슴이 착잡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언젠가 오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고, 또 내 손으로 보내는 거였는데도. 자박거리는 발소리를 들었는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본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난간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나보다도 눈높이가 조금 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박지민을 올려다보며 아주 느릿하게 입을 떼었다.
"...이제 가?"
"응."
짤막하게 떨어지는 대답이 사형선고 같다. 박지민은 계속해서 부드러운 웃음을 달고 있었는데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속이 엉망이었다. 웃어주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약속을 떠올리고 입꼬리를 파들파들 끌어올렸는데, 아주 괴상했을 것이다. 결국 일그러진 얼굴로 웃으며 눈물을 쏟아내는 꼴이 되어버렸다. 왜 울어... 박지민은 당황한 듯 손을 허둥댔다. 눈앞이 흐려졌지만 나는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마지막인데, 이제 더는 못 볼 수도 있는데 피할 순 없었다. 옥상 위에 있는 우리들 사이를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다. 작별인사를 말하라는 손짓이었으려나...
"기억하지 못하겠지?"
"...아마도."
이렇게나 가슴이 아픈데 어떻게 기억하지 못할 수 있을까. 머리는 잊어도 온 몸의 세포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연으로라도 지민이라는 이름이 들리면 어딘가 가슴이 아릿할 거고, 이 날만 되면 이유없이 허전한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나는 박지민에게 기대어 눈물을 쏟아냈다. 가지 마, 라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이기적이게 행동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그 때,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젖어있던 눈동자를 살짝 들었다. 은은하게 빛나는 거대한 날개가 나를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아주, 거대한 날개였다. 박지민은 나를 살짝 떼어내더니 내 입술 위에 제 입술을 살며시 가져다 댔다. 처음으로 맞닿은 키스의 소감은, 서글펐다. 잠시동안 붙였다 떨어진 입술은 호선을 그리며 말을 내뱉는다.
"꼭, 다시 올게."
그리고...
나는 멍한 눈으로 온기가 사라진 공중을 바라보았다. 은빛 입자가 반짝거리고 있었지만, 방금 전까지 날 안아주었던 박지민은 온데간데 없었다. 흰 깃털 하나만이 팔랑거리며 내 손으로 떨어졌을 뿐이었다.
* * *
"넌 항상 그거 하고 다니더라. 내가 봐온 햇수만으로도 6년이다, 6년."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호석이 형의 손끝이 내 가슴팍을 가리키고 있었다. 가리키는 끝은 날개 하나로 장식되어 있는 목걸이. 애인한테서 받은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 부모님?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럼 누구?"
나는 손끝으로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누구에게서 받았나, 그건 기억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매일 하고 있었다. 레디메이드 물품같지도 않았다. 작은 깃털을 쳐다보며 눈을 깜박였다. 달빛을 뿌려놓은 듯 자연적으로 빛나는 깃털. 더없이 성스럽게 느껴졌다. 종교는 믿지 않지만 천사가 있고 정말로 날개도 달고 있다면 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누구에게서 받은지도 모르는 목걸이와 함께 또 미스테리한 게 하나 더 있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을 돌아오며 나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밝게 빛나는 달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일년에 하루, 나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기분, 아니 누군가를 잃어버린 기분이 드는 날은 매년 같은 날짜다. 나에게 소중했던 누군가가 죽었던 걸까, 이 목걸이는 그 사람에게 받았던 걸까. 그게 맞다면 나는 왜 그 사람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한참동안 멈추어있던 나는 차가워진 손에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상념은 따뜻한 집에서 할 걸.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며 나는 조금 후회했다. 손이 얼어붙어서 제대로 굽혀지지도 않는다. 양 손을 잔뜩 마주비벼 얼추 녹인 나는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잠금장치가 풀린 문을 열었다. 너무 춥네, 빨리 온도나 올려야겠다. 그리 생각하고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오던 나는 다리를 멈췄다. 베란다가 환했다. 불을 안 끄고 나갔었나? 아까운 전기세를 생각하며 나는 그쪽으로 향했다.
걸어가는데 왠지 모르게 자꾸 심장이 빠르게 뛴다. 불을 키고 나온 게 아니다. 노란 전등불이라기보다는, 마치 하늘에서 쏟아진 달빛에 가까운... 베란다 앞에 도달한 나는 생각을 잇지 못했다. 한 사람이 난간 위에 앉아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팔랑거리며 떨어지는 무수한 은빛 입자, 더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비현실적인 거대한 날개.
6년 동안, 그렇게 찾아다니던, 누가 줬는지도 모르던 목걸이를... 아니, 기억났다. 저 사람, 아니 저 천사는....
박지민......
"정국아."
천사는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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