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hort

[지정] 미드나잇 썸머

나의 아버지는 아쿠아리움을 운영하신다. 규모가 꽤 크며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있어 일년 내내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지 않는 곳이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방문객이 좀 줄어들었더라.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나는 전에 가보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복도를 따라 안으로 걸음을 옮기면 벽면에 있는 해파리들이 하늘하늘 춤을 추고, 고개를 들면 수중 통로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 훤히 보였다. 중앙에는 큰 수조가 있었는데, 높이만 10m되는 수조 속은 바다를 옮겨놓은 듯 했다. 각양각색의 물고기들이 돌아다니고, 사람들은 유리벽 앞에 가까이 다가가 보면서 감탄하는, 그런 기억. 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구경하면서 눈을 반짝이지는 않았다. 갇혀서 지내는 물고기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게 첫번째이자 마지막 방문이었다. 먼저 해양 생물들을 구경하면서 기쁨보다는 걱정을 느껴 전혀 즐겁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다음으로는 물에 빠져 목숨이 위험했던 기억 때문에 자연스레 가기를 꺼려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버지의 얼굴에 흥분이 가득한걸 발견했다. 여쭤보아도 아직은 안 된다며 말씀을 하지 않아주셨는데, 이주일 후 나는 메스컴을 통해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 아쿠아리움에 인어가 있다는 것이었다. 전설 속에만 존재한다는 그, 인어. 국내부터 해외까지 많은 사람들이 인어를 보기 위해 아쿠아리움으로 몰려들어왔다. 올해 초에 바다에서 생포했다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방문객에 아버지의 입가는 귀까지 걸릴 듯 올라갔다. 인어라니. 나는 결국 호기심을 견디지 못하고 생애 두 번째로 아쿠아리움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 인어가 살고 있는 수족관은 고래 두 마리가 있는 대형 수조였다. 인어를 보기 위해 빽빽하게 들어선 사람들과 얼마쯤 기다렸을까. 고래의 지느러미에 손을 올린 인어가 헤엄쳐 나오자 사방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정말 인어야? 가짜 아니지? 몸 봐. 저거는 가짜라기에는 너무 리얼하잖아. 우와 신기하다. 수많은 말들이 흘러나왔지만 나는 단 한마디도 내뱉을 수 없었다.


수조에서 느릿하게 헤엄치는 인어가, 전에 나를 구해준 인어였어서.






미드나잇 썸머






그날은 날씨가 궂었다. 아마 그 해에서 가장 비바람이 많이 불었던 날이었을 것이다. 난간에서 구경하고 있던 나는 균형을 잃고 깊은 바닷속으로 떨어졌다. 숨을 쉬려 필사적으로 헤엄쳐 두어 번 정도는 수면 위로 떠올랐으나 이내 힘이 빠져 물 속으로 잠겨들었다. 깊게, 깊게 빠져들어갈수록 주변은 어둡고 음침해져만 갔다. 작은 손을 힘껏 뻗었지만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로, 입으로 짠물이 한껏 들어왔다. 나는 어렸지만 내가 곧 죽게 될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숨이 막혀 정신이 가물가물해질 무렵, 주홍색 머리칼이 눈앞에서 흔들렸다. 마치 불이 타오르는 듯한 선명한 주홍색은, 어두운 물 속에서도 또렷하게 들어왔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을 봤다. 그는 지체하지 않고 내 허리를 감싸안고서는 위로 빠르게 헤엄쳤다. 유속에 갈라지는 빠른 물결을 피하려 고개를 돌린 나는 그의 허리 밑이 지느러미로 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다. 나를 뭍가에 올려준 그는 내가 켈록대는걸 지켜보았다. 들이켰던 짠물을 다 토해내고 호흡이 정상적으로 돌아오자 고개를 돌린 나는 조금 떨어진 바위 위에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는 그를 발견했다. 방금 전까지 내 옆에서 등을 걱정스럽게 두드려 주었는데, 지금은 저만치 떨어져 있다. 나는 내가 조금만 더 가까이 가면 그가 바닷속으로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알았다. 눈을 내려 수면 아래에서 길게 흔들리는 그의 꼬리를 바라보았다. 아까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 인어는 부모님이 날 찾으로 올 때까지 나와 함께 있어주었다. 물에 젖어 있던 주홍색 머리칼이 모두 말라 바람에 부드럽게 휘날릴 때까지, 그렇게. 몇 시간쯤 지나 웅성거리는 사람들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뒤쪽을 한 번 바라보더니 나에게 웃어주고서는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마치 이제 너는 괜찮아, 하고 말해주는 미소였다. 나는 부모님에게 인어가 날 구해주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른들, 심지어 내 부모님조차도 믿지 않아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기억 속에 꽁꽁 포장해두었다. 


그런 그를 기억 못 할 리가 없었다. 설마 다시 보게 될 줄이야. 보고 돌아온 날 밤, 나는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눈을 붙일라치면 그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결국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나는 수족관을 찾아갔다. 들어가자마자 그가 있는 수조에 다다라서 나올 때까지 서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그가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니, 사실 그는 항상 지친 듯 눈을 감고 있었다. 고래의 한 쪽 지느러미에 손을 올리고, 고래가 움직이는 대로 지느러미를 움직여 힘없이 헤엄치기만 했다. 그가 눈을 감고 있는 이유는 사람들의 대화를 통해 쉽게 알 수 있었다. 인어와 눈을 마주하면 행운이 찾아온대. 수백, 수천 명은 그와 눈을 마주치려 애썼다. 나 같아도 지쳐서 차라리 눈을 감는 걸 택했을 것이다. 일주일을 내리 방문하자 아버지의 귀에 들어갔다. 아드님이 인어를 무척 좋아하시는 거 같습니다, 매일매일 와서 인어 앞에서만 주구장창 계시거든요. 아버지는 내가 관심을 보이자 의외라는 눈치였다. 그럴 만했다. 아버지의 허락 하에 영업이 끝난 아쿠아리움에 같이 들어갔다. 어둠이 내리앉은 고요한 아쿠아리움에 나와 아버지의 발걸음만이 울렸다.



"정국이 네가 원하면 폐장 이후에 와도 된다. 아무래도 영업 시간에는 사람이 많아 제대로 보기가 힘들 테니까." 

"...생각보다 감시가 철저하진 않네요."

" '저거'는 혼자서 걷지 못하거든."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수초 안에서 잠들어있는 그를 묵묵히 바라보았다. 생포했을 때 실수로 그가 있던 수조가 깨져 땅으로 떨어진 적이 있다고 했다. 긴 꼬리를 퍼득이며 달아나려는 인어를 간신히 잡고 황급히 다른 수조를 준비하는 동안, 물이 마르더니 두 다리가 드러났다고. 그러나 생긴 두 발로 도망치지는 못했다고 했다.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다리로는 어떻게 힘을 넣는지를 몰라 일어서는 것조차 못했다며.  


영업 시간의 아쿠아리움에서 그는 눈을 거의 뜨지 않는다. 고래의 등 위에 몸을 맡기고 맥없이 따라 꼬리만 흔들다가 영업이 종료되고, 불이 하나둘씩 꺼질 때면 그는 눈을 떴다. 폐장되고 찾아온 둘째 날에 나는 빠른 속도로 헤엄쳐 유리벽에 몸을 부딪히는 그를 봤다. 쿵, 쿵, 쿵 하는 희미하게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에 뭔가 했다. 늦게까지 수리를 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벽과 세게 부딪히는 그를 보고서 깜짝 놀라 황급히 뛰었다. 갑자기 내가 나타나자 그는 놀란 듯 뒤로 물러서더니 곧 앞으로 다가와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매서운 눈빛을 포함해 이까지 드러내며 완전한 적의를 보였다. 다만 나는 그에 신경쓰지 못했다. 붉은 무언가가 물에 풀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방금 부딪힌 왼팔에 생긴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표정과 손짓 발짓으로 그의 팔에서 상처가 나고 있음을 알렸다. 적의를 내보이던 그는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표정을 구겼고, 이내 뜻을 알아차리고서는 제 팔을 바라보았다. 상처를 확인하고 내게 고개를 돌리는 그를 보며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세차게 끄덕였다. 바로 그거! 그 상처!! 괜찮은 거 맞아요? 내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을지는 모른다. 날 보고 묘한 표정을 지은 그는 이내 몸을 돌려 수조 저 반대편으로 사라졌기 때문에.


며칠동안 나를 무시하며 헤엄치던 그는 폐장 이후에 줄기차게 찾아온 지 일주일이 되어가자 처음으로 내 앞에 멈췄다. 상체는 고정되어 있는데 하체는 계속해서 흔들고 있다는 게 좀 웃기긴 했다. 내가 웃자 그는 화난 표정으로 한 바퀴 돌고는 다시 앞에 멈췄다. 손을 뻗어서 유리에 가져다 대자 그는 한참동안 내 손을 보더니 똑같이 손을 마주 댔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서는 그에게 입모양으로 '잠깐만요'라고 말했다. 내 말을 이해했을지는 모르겠으나 마음만 급해서 아쿠아리움을 관리하는 다른 층으로 갔다. 아버지에게서 건네받은 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 그가 있을 수조의 위를 찾았다. 산소가 드나드는 작은 구멍을 제외하고는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나는 자물쇠를 풀어내고 철문을 옆으로 밀었다. 그러자 넘실거리는 물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로, 여기로 올라오면 손을 마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안으로 뭐 던질 게 없을까, 그가 알아챌 만한.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다급하게 흝던 나는 첨벙이는 소리가 나자 고개를 돌렸다. 그가 수면 위로 올라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돌아가 자리에 앉았다. 세 뼘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서 마주보고 있었다. 축축하게 젖은 주홍색 머리칼. 똑같았다. 뭔가에 홀린 듯 손을 뻗어 그와 한 뼘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을 때, 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튀었다. 눈앞을 가린 물을 닦고 다시 고개를 앞으로 했을 때 그는 좀 전 보다 떨어진 자리에서 헤엄치고 있었다.



"...알았어요, 안 만질게요."



의심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나는 피식 웃었다. 저렇게 경계가 심하면서, 대체 왜 잡혔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 표정이 어두워졌는지 나를 보는 그의 얼굴 또한 조금 어두워졌다. 아, 이러면 안 되지. 나는 애써 생각을 날려버리고 조금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정국이에요, 전정국. 그쪽은 이름이 뭐예요? 이름이 있을 것 아니에요. 아무리 찾아봐도 이름을 모르겠어서. 그와 함께 있는 고래들도 이름이 있는데 전세계에서 유일한 인어에게 이름이 없으랴 싶었다. 그러나 그는 입을 떼지 않았다. 안 알려주는건가 싶다가 그게 아니라 말을 못 하는건가 싶었다. 인어가 말을 할 수 있더라도 인어들의 말이나, 뭐 그런 게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인간의 언어를 할 줄 안다고 해도 그게 꼭 한국어라는 보장도 없었다. 어쩐지 우스워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또 올게요. 나는 내가 앉아있던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선 때였다.



"또 와."



어?


뒤를 돌았다. 그는 표정변화 없이 날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잘못 들었나, 하고 다시 발걸음을 뗐을 때였다. 방금과 똑같은 은은한 목소리가 울렸다. 기다릴게. 연이어 첨벙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야, 정국아. 그러고보니 너네 아쿠아리움에 인어 있다며?"



아이스 모카를 쪽쪽 빨아먹고 있던 호석이 형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렇게 물어왔다. 나는 한심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참 빨리도 말하시네요 형. 오픈하고 핫이슈가 된 지 벌써 두 달이나 지났는데 형은 2주밖에 안된 양 물어왔다. 아 뭐 사람이 그럴 수도 있지. 어깨를 들썩인 형은 말을 이었다. 넌 봤어? 뭐 봤겠지 내가 정말 뻔한 소리 하네. 당연하죠. 이쁘냐? 남잔데요. 내 대답에 호석이 형은 맥이 탁 풀려했다. 아 뭐야 남자였어? 그럼 별로 흥미도 없음.



"아니 그것도 지금까지 모르고 있으면 어떡해요?"

"뭘 어떡하긴 모를 수도 있는거지 뭐. 아무리 희귀해도 남자는 관심없다 야."



나는 어이없어하며 혀를 내둘렀다. 우리 형... 세상에 여자가 다가 아니란 걸 알아야 할 텐데. 다 들린다 정국아. 그래도 인어가 흥미를 돋웠던지 형은 중얼중얼거렸다. 그래도 인어라면 신기하긴 한데. 언제 한 번 보러가야겠디야. 너랑 같이 가서 공짜로 보고, 어? 그런데 인어 이름이 뭐야? 돌고래들처럼 씽씽이 그런 건 아닐 테고.



"몰라요."

"몰라? 수족관 아들인데도?"



사실 그때 나는 그와 많이 친해져 있었고, 그의 이름을 알게 되었지만 호석이 형에게 알려주기는 싫었다. 형이 싫어서가 아니었다. 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인어의 이름이 지민이라는 걸 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가 나만 알고 있으라고 당부한 게 아닌데도, 그냥.. 혼자만 알고 싶어서. 돌아가려던 나에게 첫 날 급작스레 입을 연 것처럼 그는 똑같이 급작스럽게 내뱉었다.

 

 

- 지민이야.

- 네?

- 지민이라고 불러.


 

항상 저기, 잠깐만 등등으로 불렀던 나는 '지민'이라는 이름을 그에게 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름을 알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나는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는 애매한 호칭으로 부르곤 했는데, 이름보다 익숙해졌기도 하지만 그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곱살 때 바다에 빠졌을 때 본 그의 모습이랑 스무 살이 넘은 지금 보는 그의 모습은 똑같았다. 조금도 나이를 먹지 않았기에 형인지, 아저씨인지, 아니면 심지어 할아버지인지 어떻게 아는가. 그냥 이름을 안다는 사실에만 만족하고 있었다.


흠. 모른다는 내 대답에 고개를 갸우뚱거린 호석이 형은 이내 그럴수도 있겠지 하며 수긍했다가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인어한테 이름이 없다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내가 어디서 들은건데 말이야,  



"인어는 태어나서 단 한 명에게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준대."



만일 이름을 알려준 사람이 인어의 이름을 부르면서, 무언가를 요구하면 인어는 그의 말을 거부할 수 없다고. 뭐 단순히 지어내길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이지만. 실제로 인어가 있는데, 카더라 한두개쯤은 정말일 수도 있는 거잖아? 편하게 웃으며 말하는 호석이 형을 따라 나도 같이 웃었지만 머릿속은 방금 들은 말 때문에 심히 복잡했다.



호석이 형에게 인어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돌아온 나는 그가 내 주변을 돌아다니는 걸 놔두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이제 두 다리로 서는 것쯤은 거뜬히 해낼 수 있었다. 심지어는 쓰러지지 않고 걷는 것도 가능하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말대로 그는 다리에 힘을 주지도 못했다. 내가 지탱하던 손을 풀면 바닥으로 철퍽 쓰러졌다. 나는 그때쯤 그를 이 아쿠아리움에서 탈출시킬 계획을 차근차근 세우고 있었다. 내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나도 그를 여기서 나가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내 힘으로 그를 처음부터 끝까지 아쿠아리움에서 업고 나가는 건 무리이거니와, 업은 채 빠져나가면 필히 경계에서 걸릴 거였다. 그러느니 친구로 위장하여 태연스레 빠져나가는 게 나았다. 시간이 좀 오래 걸려도, 그 편이 안전했다. 나간 다음에는 차를 타고 바다로 가서... 나는 고개를 들이미는 그의 얼굴에 생각을 끝마치지 못했다. 내가 가져온 긴 담요를 두르고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느러미가 다리로 변하면 당연하게도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라. 표정이 어두운데, 무슨 생각해? 나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그의 발밑에서 시선을 떼고 고개를 올렸다.



"지민."

"응."

"...이게 진짜 이름이 맞아요?"



그의 눈이 느릿하게 깜박였다. 그리고 눈꼬리가 길게 휘어졌다. 아, 저 웃음.



"...글쎄?"



그는 손을 뻗어서 내 볼을 어루만졌다. 물기가 다 말라 단단한 손이었다.




여름이었다. 일기예보는 밤낮으로 기록 갱신을 보도했고 시원한 실내라면 어딜 가든 사람이 붐볐다. 아쿠아리움은 평소보다 두 배 정도의 사람들이 더위를 피하러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제 인어 수조 앞에서만 있지는 않았다. 다른 곳을 구경하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변한 건 구경하러 온 사람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도 눈만 감고 있던 예전과는 달리 눈을 뜨고 작은 세상을 이리저리 누볐다. 가끔은 한 곳에 멈춰서 어딘가를 바라보곤 했다. 늘 그랬듯,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끝에는 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디데이가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이제 지치지 않고 걸을 줄 알았다. 마치 원래부터 지느러미가 아닌 두 다리로 땅을 걸었던 사람처럼. 아버지는 내 계획을 꿈에도 모르고 계셨다. 인어 덕분에 전년도에 비해 방문객이 몇십 배로 늘어났다며 좋아하셨다. 이대로면 내년에는 조금 더 넓힐 수도 있겠다며 좋아하시는 걸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인어가 없어지고, 그를 도망치게 한 게 나라는 걸 아시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까. 매우 화내시겠지. 실망도 하실 것이다. 어쩌면 배신감에 다시는 나와 말을 섞지 않으실지도 모른다. 약속 덕에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신 그날 밤, 나는 호석이 형과 함께 아쿠아리움을 숨어들었다. 아빠한테 허락 받았어요. 네.



"와..."



호석이 형은 지느러미가 두 다리가 되는 광경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준비한 옷을 입고 일어난 그를 보며 호석이 형은 제 뺨을 번갈아 한 대씩 쳤다. 형, 진짜 고마워요. 나는 후드를 뒤집어쓴 그와 함께 나가며 형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난 모르는 일이야. 끝까지 시치미를 떼준 형에게 고맙다고 다시 인사를 건넸다. 됐다 마, 빨리 가기나 해. 그를 데리고 관리 아저씨의 옆을 지나는 순간 가슴이 미친듯이 두근두근 거렸다. 혹시 쓰고 있는 후드를 내려보라고 할까봐.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계단을 오르고 아쿠아리움 출구를 나온 나는 그와 서로를 마주보았다. 성공한게 실감나지 않았다. 심장이 미친듯이 쿵쿵 뛰고 있었는데 얼굴은 미소를 감출 수가 없어서 힘들었다. 나 괜찮았어? 어색하게 물어오는 그의 물음에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남은 건 바다로 가는 것뿐이었다.


몇 시간을 달려 바다에 도착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짠 바닷공기가 불어오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길을 따라 내려가는 동안 드디어 완전히 성공했다는 기쁨에 나는 히히덕 거렸다. 돌부리에 걸려 비틀대 그가 내 손을 잡아주는 순간에도 미친 사람처럼 꺄륵 웃기만 했다. 우리가 해냈어요, 진짜 해냈어. 그는 웃기만 할 뿐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나는 순전히 그가 내 말에 동의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비교적 큰 바위 위에 앉아 등을 맞대고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좋죠. 응. 철썩이는 바닷소리에 취해 눈을 감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문득 튀어나왔다. 사실 내 이름 말이야.



"정말 지민 맞아."

"아, 정말요? 그때 글쎄라고 해가지고 거짓말 한 줄 알았어요. 정말 지민이 맞구나... 왜 글쎄라고 했어요 그럼?"

"그냥."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지만 그순간 전에 호석이 형한테서 들었던 말이 스쳐지나갔다. 인어는 태어나서 단 한명의 사람에게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알려준대. 인어의 이름을 부르면서 무언가를 명령하면, 인어는 그걸 거절하지 못하고. 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왜 나에게만 진짜 이름을 알려준 건지, 너무, 너무...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가만히 있으면 이상한 행동을 해버릴 것 같아 나도 덩달아 입을 열었다. 사실, 나 바다 정말 오랜만에 와요. 나는 천천히 말을 꺼냈다.



"예전에 바다에서 일이 좀 있어가지고... 그런데 지금 보니 좋아요."

"........."

"이제는 바다가 좋아질 거 같아요. 바다를 보면서 아, 여기쯤 있겠구나, 어쩌면 여기서 헤엄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고 생각하면 좋을 수밖에 없잖아요." 



나는 내 손을 감싸쥐는 그의 손이 느껴졌다. 정국아. 네. 내가 바다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의중을 알 수 없는 질문에 고개를 돌렸다. 그는 날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한걸 물어볼 필요는 없어요. 난... 정말, 진심으로 돌려보내고 싶으니까. 물론 그립기는 하겠죠. 그래도 괜찮아요. 영원히 못 보는 건 아닐 테니까요.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볼 수 있지 않겠어요? 웃음기가 섞인 내 말에도 그는 웃지 않았다. 설마. 나는 웃음기를 지웠다. 너랑 같이 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 아니, 괜찮아. 나를 보는 눈동자에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나랑 같이 있으면 괜찮다니, 전혀 괜찮지 않다. 이미 사람들은 그의 얼굴을 안다. 대통령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인어의 얼굴인데. 사람들은 그의 얼굴만 봐도 '그 인어'인 걸 알아챌 것이다. 거대한 수조에 가둬서 헤엄치는 걸 보려 하겠지. 아니면 경매에 부쳐서 많은 부를 얻으려고 하거나. 나는... 나는 괜찮지 않다. 그런 걸, 더 이상 보고 있을 순 없었다. 나는 내가 뭘 해야하는지를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나를 바라보는 저 두 눈.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열리는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를 안다. 나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지민아,"



내뱉으면서 울었다. 이만...



"바다로... 돌아가."



모두 사실이었다. 전설 속의 인어는 실재한다는 것도, 인어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 사람의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도. 나는 첨벙이는 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걸 보았다. 그가 내 말을 듣고 한참동안 고개를 들지 못한 바위에서는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다가가니, 작은 보석들이었다.


 

인어가 사라진 수조를 보고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 다음으로는 날 붙잡고 우시고, 다시 화내는 걸 반복하셨다. 왜 그런 짓을 했어...왜....! 한탄섞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대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기억하세요? 바다에 빠져 사라진 절 새벽에 구하러 오셨을 때요.. 모두가 하늘이 도왔다고 했죠. 파도에 휩쓸려 운 좋게 뭍가로 온 거라고. 아뇨, 인어가 절 구해줬었어요. 그래요, 아버지가 잡아온 그 인어 말이에요..


인어가 사라진 아쿠아리움에는 전처럼 많은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간혹 그 소식을 모르고 인어를 보러 오는 사람들도 있긴 했다. 그들은 인어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고서는 아쉽다고 발걸음을 돌리는 반면 원래 인어는 없었는데 거짓말을 친 거라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뭐든 괜찮지 않을까. 나는 빈 수조를 바라보며 깊은 바닷속을 자유로이 헤엄치는 그를 상상했다. 몇 해 후, 나는 어떤 배에 올랐다.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긴 여정을 가진 선박이였다. 난간에 기대 바다를 보고 있던 나는 무언가가 튀어오르자 그쪽을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 그가 이 밑을 헤엄치고 있을까, 해서. 그러나 수면위로 튀어오른 건 돌고래였다. 돌고래라니.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주변에서는 난데없는 돌고래의 등장에 귀여워하며 소리지르는 목소리가 가득했다. 나는 선실 안으로 들어가 책을 폈다. 그 일이 있은 이후에 나는 인어에 대해 닥치는 대로 찾았다. 전설이든지 미신이든지, 다 그냥. 그중에는 맞는 것도 있었고 틀린 것도 있었다. 맞는 건 인어는 뭍으로 나오면 꼬리가 인간의 두 다리로 변한다는 것과 인어의 눈물은 보석으로 변한다는 거였다. 틀린 건 인어는 여성체만 있다는 것과 말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맞는지 틀린지 모르는 것도 몇 개 있었다. 인어의 키스를 받으면 물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 혹은 인어가 진정으로 인간을 사랑한다면 그를 저와 같은 인어로 만들게 할 수도 있다, 같은.


부산스러운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복도를 가로질러 달려가고 있었다. 풍랑이 거세서 배가 기울고 있었다. 한 쪽 프로펠라는 망가져 더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미 구조요청은 한 뒤였으며 몇 분 후면 구조대가 도착해 사람들을 무사히 구출할 수 있을 터였다. 나는 중심을 잡으려 끝쪽의 난간을 잡고 버티고 있었다. 비바람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었다. 그 때, 훅 하고 높이 들이친 파도에 나는 그만 손이 미끄러져 바닷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파도에 휘말려 떠오르지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빨려들어가면서 나는 수면을 향해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끝이구나, 를 생각하고 있을 때 손을 턱 잡아오는 힘, 그리고 다시금 보이는 흔들리는 주홍색 머리카락...


그였다.

 


*  *  *


그 뒤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나의 말을 듣는 당신들은, 내가 무엇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Sho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정] Wings 上  (0) 2017.05.24
[지정] CCCC 上  (2) 2017.05.12
[지정]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7) 2017.03.29
[지정] 전전전생(前前前世)  (15) 2017.03.14
[뷔진] 사랑의 대가 下  (13) 2017.0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