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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불협화음 上

매끄럽게 멈춘 차에서 내린 지민의 발이 멈춘 곳은 인신매매가 벌어지고 있는 경매장이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있었지만 지민은 이 자리가 몹시 껄끄러웠다. 보스의 뜻이 아니었다면 오지 않았을 장소였다. 지민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얼굴을 하고 있는 윤기를 바라보았다. 작지만 날선 눈으로 경매에 붙여지고 있는 자들을 향하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



"간다."



윤기의 말에 지민도 따라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나 윤기의 하얀 손이 지민의 앞을 가로막았다. 왜 그러시냐며 물으려 했던 지민은 곧이어 들려오는 설명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 이 경매장, 저쪽 놈들의 소유다."

".........."

"삼켜. 볼 것 없는 곳이지만 이걸 기반으로 이어진 게 많다. 몸소 겪어보면서 먹을 계획 생각해봐."



필요한 말만 내뱉은 윤기는 지민을 남겨두고서는 자리를 떠났다. 고개를 숙여 보스를 배웅한 지민은 도로 자리에 앉아 계속 경매가 이어지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시선을 돌려 내부의 구조와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감시원들을 확인한다. 저 놈들은 그쪽의 말단들이겠지. 방금 전 들은 말로 마냥 껄끄럽기만 한 이 곳은 사냥을 하기 위한 준비소가 되어 있었다. 어느 새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곳곳을 뜯어보고 있는 지민은 경매장에 완벽하게 적응해 있었다. 그래서 어릴 때 끌려와서 개죽음을 당하지 않고 조직원이 될 수 있었으며, 현재 보스의 오른팔까지 올라온 거였다. 몇 번의 경매과정을 지켜보며 분석을 대강 끝마친 지민은 이만 나가려고 했다. 다음으로 끌려나온 한 사람만 아니었으면.



"자, 다음 물건입니다."



진행자의 손에 강제로 턱이 붙들려 앞을 향한 얼굴. 조명 아래에 비춰지는 얼굴을 확인한 지민은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정국이었다, 정국이. 여덟살 때 처음 고아원에서 만나 열한 살 때 아이들을 학대하는 원장을 피해 같이 도망쳐나온 그 아이. 살기 위해서 같이 도둑질을 하고, 구역을 침범해서 다른 부랑아들에게 구타당하던 날들을 함께한 아이. 마지막으로 본 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이었다. 아침에 나가면서 빨리 갔다올게, 하고 인사하던 제 말에 고개를 끄덕여보이던 어린 얼굴. 어떻게 되었을까, 죽었을까, 살았을까조차 하나도 모르고 기억의 아릿한 한 구석쯤으로 미뤄두었는데.


지민은 손을 들었다. 입은 열려 지금껏 나온 액수보다 높은 금액을 불렀다.






불협화음






기억의 시작은 고아원이었다. 그 전의 날들은 기억속에 없다. 그래서 지민은 자신이 부모에게 버려졌는지, 혹은 자신이 부모를 잃어버린 건지 알지 못했다. 다만 절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던 걸로 부모가 자신을 버렸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지민은 여섯 살부터 고아원에 살았다. 평범한 아이들이라면 유치원에 다녔을 테지만, 지민에게 그것은 사치스러운 꿈이었다. 고아원에서는 하루에 두 번만 밥이 나왔다. 아침과 저녁. 한창 자랄 때의 아이들에게 두 번의 식사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아이들은 온지 얼마 되지 않아 힘 없는 지민의 것을 노렸다. 가끔 저보다 힘이 센 아이들에게 할당량을 빼앗기는 날에는, 지민은 쓸데없이 체력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구석에 미동없이 누워 있었다. 그래도 시간이 흘러 적응을 하자 지민은 제 몫을 빼앗기지는 않게 되었다.


2년 뒤, 지민은 고아원 앞에 엎어져 있는 한 아이를 발견했다. 남자아이였다. 한참동안 가만히 바라보던 지민은 아이를 고아원 안으로 질질 끌고 들어왔다. 제가 쓰는 방에까지 끌고 온 다음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흙투성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꽤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고아원에서 쉽게 나갈 수 있을 만한 외모였다. 그러니까, 입양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민의 생각과는 달리 정국은 입양되지 못했다. 단 한 번도.


원장은 뜻대로 되지 않으면 패악을 부리는 사람이었다. 원장은 갈 데 없는 아이들을 거두어 길러주는 자선가쯤으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지민은 원장에게 뺨을 맞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눈깔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차별하게 쏟아지는 폭력 속에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지민은 고아원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뒤에는 원장의 눈에 띄지 않게끔 몰래몰래 다녔다. 원장은 취향이 변태같았다. 큰 아이들은 때리지 않았다. 손에 착착 감기는 맛이 없다나 뭐라나. 어리면 어릴 수록 살결이 부드럽고 야들야들하고, 작은 손찌검에도 붉게 물드는 게 즐겁다고 했다. 저보다 어린 정국은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다.

  

술에 취한 원장이 벨트를 풀어 정국을 내리칠 때면, 지민은 쏜살같이 나타나 온 몸으로 정국을 끌어안아 보호했다. 짝, 하고 등을 후려치는 소리가 날 때마다 지민은 정국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파들파들 떠는 몸을 하면서도,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는 원장의 목소리에도 지민은 정국을 안은 팔을 절대 풀지 않았다. 지민의 품에 안겨 있던 정국은 눈물 콧물을 다 뽑아냈다.



'형아아아...'

'으응, 국아, 눈 감자. 눈 감고, 좋은 생각만 하자.'



지민은 정국을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보물쯤으로 생각했다. 둘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이 없었는데도 그랬다. 어쩌면 그 날 고아원 앞에 버려져 있던 정국을 제 손으로 이끌었던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지민은 정국을 저보다도 더 소중하게 여겼다. 거지 같은 고아원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서는 정국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정국이 동의하자, 지민은 원장이 잠이 든 밤을 틈타 정국의 손을 잡고 고아원을 떠났다.


둘은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했다. 버려진 판잣집에서 잠을 자고, 세수하고. 동냥을 하고. 일정한 수입이 없어 사는 게 힘들어지자 지민은 소매치기를 했다. 몸놀림이 잽싼 지민에게 소매치기는 제격이었다. 방심한 틈을 타서 지갑을 훔치고, 그 돈으로 맛있는 음식들을 사 먹고, 옷을 입고. 물론 항상 성공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걸려서 잡히지 않도록 죽을 만큼 뛰어야 한 날도 있었고, 훔쳤지만 무리로 다니는 아이들에게 뺏은 돈을 빼앗긴 날도 있었다. 그러나 뼈아픈 경험과 빠른 습득력을 통해 지민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다. 열세 살이 되자, 지민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서 월등한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지민은 잭나이프를 항상 몸에 소지하고 다녔다. 뺏은 돈을 빼앗으려 드는 아이들에게 가차없이 응징을 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서늘한 눈동자. 지민이 굳이 칼을 쑤셔박지 않아도 겁먹은 아이들은 패배를 선언했다. 그러나 서늘한 눈동자는 정국의 앞에만 가면 봄날로 바뀌었다. 따뜻함이 가득 담겨있는 지민의 눈.


거의 실수하지 않던 지민이 실수한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지민은 나이프를 상대에게 들이댔으나 남자는 코웃음쳤다. 그대로 지민의 목줄을 잡아 벽으로 처박았다. 남자의 행동에서 지민은 죽음을 직감했다. 그와 동시에 절 기다리고 있을 정국의 얼굴도 떠올랐다. 시뻘개진 눈을 하고서 남자의 손등을 긁어내고 있던 지민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부르는 남자의 말에 주목했다.



'보스.'



몇 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목을 조르고 있던 남자의 손이 떼어졌다. 반사적으로 기침을 하던 지민은 또다시 남자의 손에 이끌려 바닥에 내팽겨쳐졌다. 손등으로 입가를 훔친 지민은 고개를 들어 제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체격이 작았다. 그러나 그도 모두 커버할 만큼 흘러나오는 위압감이 상당했다.



'살고 싶으냐.'



보스라 불린 남자가 무감각하게 물었다. 지민은 여기서 그렇다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죽을 거란걸 알았다.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 길로 남자의 조직에 들어갔다. 3년간 배우고 난 뒤에는 본격적으로 현장에 뛰어들었다. 지민은 어린데도 불구하고 탁월했다. 그렇게 13년을 지내며 오른팔까지 오른 지금이지만, 지민의 기억 저편에는 그 때 말도 하지 못하고 헤어진 정국이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재회할 줄은 몰랐지.


지민은 양 팔이 붙들려 저에게 걸어오는 정국을 굳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가장 높은 금액을 부른 자신에게 낙찰된 정국은 인도장에서 기다리는 저까지 오는 내내 안대를 쓰고 있었다. 발목과 손목에는 질질 끌리는 쇠사슬도 함께였다. 낙찰되어 이제 끝났다고 방심한 틈을 타 상품이 도망쳐버렸다는 고객들의 항의를 받고서 수정된 결과였다. 마침내 인도해온 사내가 족쇄의 열쇠까지 넘겨주자 지민은 거칠게 받아들고서는 아까부터 가리고 있던 안대를 벗겨냈다. 질끈 감겨 있던 눈가가 파르르 떨리더니 까만 눈동자가 온전히 드러났다. 지민은 처참한 심정을 억누르며 정국을 불렀다.



"...정국아."



그러자 살짝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어갔다. 한동안 자신 없이 달싹이던 입술이 열렸다. 설마, 지민이 형...?



"정말 지민이 형이에요...?"

"응, 맞아. 나야, 지민이 형이야 정국아."



지민은 애써 미소를 지어보였다. 가끔씩 정국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때면 지민은 아이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곤 했다. 힘 없는 어린아이였기에 떠오르는 것은 부정적인 선택지들 뿐이었지만 지민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길 바랐다. 우연히 좋은 사람에게 거둬져 좋은 사람을 만나고 있을 정국을 상상하며 기억을 접었다.


지민은 정국을 끌어안고서는 고개를 파묻었다. 기억 속에 있던 따스한 정국의 향이 아닌 어딘가 어두움을 풍기는 향이 코로 들어왔다. 그에서부터 암담한 기억을 엿본 지민은 울고 싶어졌다. 그러나 지민은 몸을 떼고서는 정국에게 엷게 웃어보였다.



"가자, 정국아. 형이랑 같이 가자."

 

 

* *


 

"와... 이게 형이 쓰는 방이에요? 혼자?"

"응."



방에 들어선 정국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VIP들을 위한 전용 엘레베이터를 타고 자신이 쓰는 호텔방에 정국을 안내한 지민은 아이처럼 감탄하는 정국에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마음은 굴뚝같아도 조직으로는 데려갈 수 없다 판단했기에 다음 방안으로 택한 거지만 이렇게 좋아하니 잘했다 싶었다.


정국은 널찍한 방 안을 자박자박 걸어다니고 있었다. 입고 있던 얇은 옷도 정국이 움직일 때마다 팔랑거렸다. 지민은 정국을 보면서 문득 처음 정국을 데리고 온 날을 떠올렸다. 제 방까지 끌고 와서 아이가 눈을 뜰 때까지 한동안 바라보고만 있던 자신. 기다리기를 한참, 겨우 떠진 까만 눈동자를 넋 놓고 바라보던 저.



"형?"



절 부르는 목소리에 지민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커 버린 정국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절 바라보고 있었다. 지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보이곤 정국을 욕실로 밀어넣었다. 갈아입을 옷도 건네준 지민은 문을 닫아주고서 창가 옆에 놓여있는 의자에 앉았다. 목을 꺾어 눈을 감은 채 생각을 흘려보내던 지민은 느껴지는 진동음에 전화를 받았다.



- 형님, 지금...

"별 일이야?"



상대에게서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민이 물었다. 그러자 아뇨, 별 일은 아닌데요...하고 머쓱한 대답이 들려왔다. 지민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별 거 아닌거면 부르지 말랬지. 조금은 날카롭게 받아친 지민은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려오자 흘끗 시선을 주었다.



- 죄송합니다.

"후, 됐어. 끊는다. 아, 보스께 오늘은 일이 있어서 못 가겠다고 전하고. 그래도 파악은 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 예.



간단하게 통화를 끝마친 지민은 정국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문이 열리자, 기다리고 있던 지민은 예상과는 다른 정국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준 옷을 입고 있어야 할 정국은 그저 샤워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물기어린 머리칼을 대충 털어낸 정국은 지민에게로 다가왔다. 여기 되게 좋네요. 특히 욕실에 있는 바디워시 향이 좋아요. 지민은 여민 옷 사이로 언뜻 보이는 정국의 속살에서 시선을 떼고 입을 열었다.



"옷은?"

"아, 안 맞아서요."



좀 작더라고요. 정국은 푸스스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 지민은 의미없는 감탄사를 흘렸다. 이렇게 보니 체격이 좋은 것도 같았다. 키도 저보다 큰데 제 옷이 정국에게 맞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까 정국에게 옷을 건네주는 순간에는 당연히 옷이 맞을 줄 알았다. 아무래도 어릴 적의 정국이 깊게 자리잡아서일까. 지민은 정국이 성인이 된 이 순간에도 그때처럼 어려보였고, 그때처럼 나서서 지켜줘야만 할 작은 아이 같았다.



"고마워요."

"응?"

"저, 빼줘서."



침대 끝에 앉은 정국이 지민에게 감사를 건넸다. 누구에게 팔려갈까 두려웠거든요. 제발 누구든 이상한 변태만 아니게 해 달라고 빌었는데, 형일 줄은 몰랐어요.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어요. 내가 알던 형 얼굴이 거의 없어져서, 날카로운 선만 남았잖아요. 정국은 손을 뻗어 지민의 손을 잡았다. 손을 하나하나 뜯어보던 정국은 지민의 넷째 손가락 마디에 남아있는 흉터를 보고 눈동자를 휘었다.



"아직도 안 없어졌네, 이거."



정국은 지민의 손에 남은 흉터가 어떻게 생긴지를 잘 알고 있었다. 손바닥에 남은 굳은살을 만져보던 정국은 지민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살아왔어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함축된 수많은 말들을 알아들었다. 지민은 미약하게 웃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한참동안 지민은 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 날 그렇게 가버려서 미안하다는 십 년 전의 사과도 덧붙였다. 정국은 경청하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괜찮아요. 정국은 지민을 침대로 이끌었다. 팔을 붙잡고 풀썩 누워버린 정국을 따라 지민도 풀썩 누웠다. 이렇게 만나니까 사람 일은 정말 모른다는 말이 맞나 봐요. 정국은 줄줄 말을 늘어놓았다. 솔직히 형이 그렇게 사라져버린 후에 걱정 많이 했었거든요. 어디 내가 모르는 곳에서 죽은 건 아닐까. 물론 원망도 했어요. 만일 살아있으면 나를 버리고 떠난 걸까. 형이 나를 버린게 아니라 다행이에요. 그리고,



"형이 괜찮게 지낸 거 같아서 다행이에요."



지민은 정국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동안 너는 뭘 했는지, 어떻게 지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국이 있던 경매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위의 삶을 살았으니까. ...몸을 파는 그런 일들. 지금은 편안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험한 손님들을 받으며 우는 목소리를 내던 날들도 많이 있었을 터였다.



"이제 형 어디 갈 일 없으니까, 정국아."



정국의 손을 힘있게 잡으며 지민은 약속했다. 지킬 힘도 충분히 있으니까. 이제는 힘든 일 안 해도 돼, 형 옆에 있어. 지민의 말을 들은 정국이 예쁘게 미소지었다. 





예전이면 몰라도 지금의 지민은 현장에 나가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사소한 영역 싸움이라면 지민의 선까지 올라올 일도 없었다. 지민이 직접 현장에 나가는 일은 까다롭고 조잡하며 골치아픈 일일 경우였다. 혹은, 배신자를 직접 처단할 경우나. 지민은 그러한 복잡하고 불명예스러운 것들을 깔끔하게 해치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날들은 지민의 검은 양복은 피로 흠뻑 물들곤 했다. 자신의 피가 아닌, 상대의 피로.


지민은 밑에서 바르작대는 손을 구두끝으로 짓밟았다. 그리고 다리를 우아하게 들어올려 남자의 턱을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피가 흩뿌려졌다. 형,님... 남자는 쿨럭이며 지민을 불렀다. 지민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원호야,



"누가 네 형님이야?"



지민은 웃는 얼굴 그대로 남자의 명치를 걷어찼다. 컥컥대는 소리와 함께 부들거리는 손이 보이자 지민은 심드렁한 얼굴로 손을 펼쳤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하가 니퍼를 건네자 지민은 잘 드나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남자의 얼굴은 곧 닥쳐올 고통에 벌써부터 파랗게 질린 상태였다.



"원호야."

"사,살려주십쇼 형님..."

"왜 그런 짓을 했어, 그러게."



내 손으로 이러려니 좀 슬프다. 지민은 몸을 숙여 남자의 새끼손가락에 니퍼를 가져다댔다. 응? 웃으면서 힘을 주자 남자의 비명이 지하실을 가득 울렸다. 잘려진 부분에서 흘러나온 피가 지민의 손을 적셨다. 지민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벌벌 떠는 남자에게 말을 이었다. 원호야. 사람의 뼈가 몇 개나 되는 지 알아?



"206개야, 206개."

"으으...."



얼굴 하나 바뀌지 않고 206번이나 잘라주겠다고 음산하게 중얼거리던 지민은 울리는 진동음에 물었다. 누가 핸드폰을 안 꺼놨어? 싸늘하게 떨어지는 목소리에 동료였던 배신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부하가 대답했다. 혀,형님 것 같습니다만.



"내 거?"



지민은 책상 위에서 시끄럽게 진동하고 있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정말이네. 방해받아 짜증난단 표정으로 발신인을 확인한 지민의 표정이 풀어졌다. 정국이었다. 지민은 가지고 있던 총을 부하에게 던져주고서는 어깨를 툭툭 쳤다. 승도야. 너 원호랑 친했었지? 그러면 자비를 베풀어줘라.



"내가 돌아왔는데 안 죽어 있다면 뭐, 다시 시작하는 거고."

"........."

"하나하나, 206번."



두어 번 토닥여준 지민은 그대로 지하실을 나서 전화를 받았다. 어, 정국아. 지하실의 출구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에 아래층에서 희미하게 탕 하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 바빠요?

"응. 아니, 지금 다 했어. 왜? 심심해?"

- 조금.



지민이 피식 웃었다. 빨리 갈게. 빨리 온다고 해도 한 시간 정도는 걸리잖아요. 조금 투덜거리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화장실에 들러 피가 묻은 손을 씻어내며 지민은 장난으로 받아쳤다. 그럼 형 마중이라도 나올래? 그러자 예상과는 다른 대답이 들려왔다.



- 사실 이미 나왔는데.

"....뭐라고?"



다음으로 이어진 말에 지민은 경악했다. 채 씻지 못한 피를 옷에 대충 문지르고서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지민이 건물을 들어갔을 때 정국은 또랑또랑한 눈으로 절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는 물론, 영문을 모르는 부하들이 정국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떻게 정국이가 여기 있는 거지. 한 번도 알려준 적 없는데. 지민은 이마를 짚지 않은 손으로는 부하들더러 물러가라고 휘휘 저었다.



"여기는 대체 어떻게 온 거야?"

"네비게이션 가장 최근에 찍힌 주소대로 왔어요."



여기가 형이 있는 데구나. 방금 전 둘러싸고 있던 남자들이 무섭지도 않았던 건지 정국은 가볍게 말했다. 지민은 한숨을 쉬고서는 앉아있는 정국을 제 방으로 이끌었다. 방문을 닫고서야 한 숨 돌린 지민은 입을 열었다.



"정국아. 여기 함부로 오면 안 돼."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으니 망정이지, 침입자를 대하는 조직의 지침서를 알고 있는 지민은 전화를 받고서 너무 놀랐다. 엄한 목소리로 주의를 주자 정국의 눈썹이 아래로 내려갔다. 알고 있었는데, 나만 혼자 있기가 너무 심심해서..



"그리고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떨어지는 정국의 목소리에 지민이 입을 다물었다. 보고 싶다. 라는 말이 심장에 크게 박혔다. 정국은 알 지 모르겠지만, 지민은 그 날 정국을 데리고 온 날 이후부터 자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물론 조직의 일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달라진 점이 있지만, 감정의 부분에서. 지민은 정국의 얼굴을 좀 더 구석구석, 세세히 보기가 일쑤였다. 으레 그 행동은 '예쁘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정국의 선은 남자다웠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선도 갖추고 있었다. 지민의 시선이 정국의 입술에 머물렀다. '저 입술은 부드러울까'.



"형."



절 부르는 정국에 지민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정국은 단호한 얼굴을 하고 절 보고 있었다. 형이 무슨 일 하는지 알아요. 형이 저 지켜줘야 할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받기만 하며 사는 건 싫어요. 저도 잘 해낼 자신 있어요. 형의 약점이 안 될 자신 있다고요.



"원장이 휘두르던 폭력에 형 밑에서 떨기만 하는 어린 애,"

".........."

"아니에요."



안 된다고 말해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는 달리 지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정국은 의외로 조직 생활에 잘 적응했다. 지민의 완강한 반대로 현장에 나가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정국은 만족한다고 했다. 고집을 부려서 미안하다고도 했다. 지민은 정국의 피부까지 스며든 어두운 향은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에 피비린내까지 추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날 정국을 혼자 두고 떠나지만 않았다면 정국은 경매장까지 갈 일도 없었을 거였다. 아니, 고아원에서 같이 도망치지만 않았어도... 지민은 제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며칠 전 건조한 목소리로 툭 던졌던 윤기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지민아.'

'예.'

'정부에게 많은 감정을 쏟아붓는 건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다.'

'예?'



윤기는 보고받은 서류들을 팔랑 넘겨가며 무신경하게 말을 이었다. 이리저리 쉽게 다니길 좋아하는 족속들이야. 베개에서 하는 말들도 조심하고. 그들은 베갯머리에서 무심코 흘린 말을 머리에 잘 주워담아 비싼 값에 팔아먹는 걸 즐기니까. 지민은 반박했다. 보스께서 무슨 말을 들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애는 그럴 애가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부가 아닙니다.'

'그래?' 



얼굴을 뚫어버릴 듯 가만히 주시하고 있던 윤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조만간 될 것 같군. 네 눈이 그래.'



​지민은 방 문을 열었다. 담요 한 장만을 두른 정국이 소파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지민은 정국의 옆에 가 앉았다. 손을 내밀어 정국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답지 않게 손끝이 바르르 떨렸지만, 지민은 그것을 아직 채 깨지 않은 술기운으로 치부하기로 했다. 이마를 내려온 손은 코끝을 지났고, 입술을 향했다. 지민은 정국의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입을 맞댔다. 순전히 충동에서였다. 지민은 부드러운 입술 사이를 파고들어 혀를 옭아맸다. 그 순간 감겨져 있던 정국의 눈이 뜨였다. 정국은 당황해보였지만, 지민은 정국을 억누르고 키스를 이어나갔다. 조금은 강압적인 키스였다. 잠겨져 있던 욕망이 새어나오면서 지민은 죽을 것만 같았다.



"아....ㅇ, 형....."



언제부터 이 애를 이렇게 하고 싶었을까. 입을 맞추고, 목덜미에 코를 대고 체향을 깊게 빨아들이고, 손으로는 허리를 어루만지고, 다리 사이에 내 다리를 끼워넣어 벌리고 싶다. 발목을 잡아 들어올려 또 입을 맞추고, 어깨 위에 올려놓고 움직이고 싶었다. 정국의 목덜미를 질근질근 깨물고 있던 지민은 정국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장면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불에 데인 듯 화들짝 일어나 소파에서 떨어져나갔다. 정국은 지민이 흐트러놓은 자세 그대로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미안...미안, 미안해 정국아."

".........."

"아 씨발...하,"



너무 당황해서 욕까지 지껄인 지민은 그대로 방을 박차고 나왔다. 조금 남아있던 술기운이 완벽하게 깼다. 지민은 방 앞에 주저앉아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충동을 참지 못하고 저질러버렸다. 얼마나 놀랐을까, 또 얼마나 상처일까. 지민은 한참동안 굳어서 일어나지 못했다. 간신히 되찾은 관계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로, 망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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