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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킬 유어 달링

정국은 취조실 탁자 위로 엎어져 있는 지민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 가량 이어진 취조에 뒷모습만 보아도 잔뜩 지친 기색이 가득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이은 실종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어 저 안에 있는 것이지만, 정국은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민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프미러 앞에 서서, 난방도 잘 되지 않는 썰렁한 방 안에 널브러져 있는 지민을 보며 정국은 가엾다고 느꼈다.



"그거, 이 일 할 때 제일 도움이 안 되는 거다."



정국은 고개를 돌렸다. 종이컵을 손에 든 윤기가 정국의 뒤에 와서 멈춰 섰다. 아까전까지 지민을 취조하던 선배였다. 정국은 네? 하고 약간은 멍청하게 되물었다.



"동정."

"......."

"이 일 하면서 제일 필요없는 감정이 그거야. 용의자를 불쌍해하는 형사라."

"그렇지만...!"



정국이 말을 꺼내려고 하자 윤기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정국은 입을 다물었다. 윤기의 눈이 취조실에 있는 지민을 잠시 향했다가 정국에게로 돌아왔다. 윤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굴만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소리야.



"지금껏 밝혀진 흉악범들의 얼굴을 떠올려 봐. 다들 평범하게 생겼어."

"........."

"그중에는 법 없이도 살 것 같이 선량하게 생긴 자도 있었고."



물론 그 자는 토막살인사건의 범인이었지만.


윤기는 다 마신 종이컵을 구겨 버리며 말을 이었다. 정국은 더 할 말이 있다는 표정이었으나 서늘한 눈빛에 차마 말하지 못하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윤기는 정국의 어깨를 톡톡 쳤다.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 봐. 내가 말한 거 잊지 말고.



반짝. 감겨 있던 지민의 눈동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에게로 향했다. 정확하게는, 정국 쪽으로. 하프미러 덕분에 밖의 상황이 보이지 않을 것임이 분명한데도 지민의 눈동자는 정국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 가늘어지는 눈, 입가에 지어지는 잔인한 웃음.




「 귀엽네. 」 






킬 유어 달링






"저 범인 아니에요."



정국이 취조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지민이 말한 첫마디는 그거였다. 정국은 멈칫했다가 문을 마저 닫고서는 지민의 앞으로 와 앉았다. 정국은 팔랑거리는 종이를 앞에 탁 하고 내려놓고서는 시선을 지민의 얼굴에 두었다. 지쳐있는데다가 억울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 거짓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표정이었다. 들어오기 전 건넨 윤기의 말이 오버랩된다.



- 조심해. 저 자식 어딘가 위험하다.

- 눈동자가 안 웃기라도 해요?



정국은 윤기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다 속여도 눈동자로는 티가 난다는 말을 떠올리곤 물었다. 그러나 윤기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 그 반대야. 눈까지 완벽하게 속이고 있거든.



모든 걸 의심해라. 자신의 감각마저도. 반복해서 다짐한 정국은 지민의 말을 못 들은 척 흘려들으며 그의 앞으로 실종자들의 신원정보가 있는 파일들을 하나둘씩 펼쳐놓았다.



"강하현, 28세. 김유원, 32세. 신민영, 23세, "

"아까도 봤어요. 실종된 사람들이라면서요. 어디 다치진 않았겠죠 저 사람들?"

"네가 한 짓이잖아. 이 사람들 어떻게 했어?"



정국은 제 목소리가 위엄있게 들리기를 바라며 날카로운 눈으로 지민에게 캐물었다. 지금까지 실종된 인원만 9명이다. 그리고 실종된 사람들 모두 공통적으로 다 너랑 접촉한 경험 있다는 거 알아냈어. 그러니까 말해.



"전 정말 모른다니까요. 이 사람들 만난 거 기억에도 없는데 나더러 뭘 말하라는 거예요?"



지민은 정말 억울하다는 듯 약간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정국은 입술을 깨물며 관자놀이를 짚었다. 사실 그랬다. 이번 실종사건은 이상할 정도로 증거들과 이유가 부족했다. 차라리 시체가 발견되었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추리해나갈 수 있겠는데, 한번 사라진 후로는 그 어디에서도 머리털 한 가닥조차 찾아볼 수 없어서. 자진 출가라면 동기라도 있을 텐데, 실종자들은 말없이 사라질 동기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성실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건은 근래들어 최고의 골칫거리였다. 눈에 확 띄는 피해자들은 없는데 말없이 사람들만 자꾸 사라져서.



"그냥 우연히 저 사람들끼리 어디로 여행 떠난 거 아닐까요?"

"무슨 헛소리..."

"그렇지만 전 실종된 사람들이 누군지도 여기 끌려오기 전까지 몰랐다니까요."



전 정말 억울해요. 게다가 배고파서 반찬거리나 사려고 밖에 나오는 순간 용의자라고 체포되어서 한 끼니도 못 먹었어요. 왔더니 아까 그 하얀 형사님은 무섭게 캐묻기만 하고. 목마르다고 하는데도 물도 안 주고. 밥도 안 주고. 선량한 시민을 괴롭혀도 되는 거예요? 경찰은 민중의 지팡이 아니냐고요.


할 말이 많았던 듯 우다다 쏟아내는 지민의 말에 정국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꽤나 촉이 좋은 편이었다. 수사는 과학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진행해나가는 게 맞지만, 정국은 제 감도 일종의 과학적인 증거에 포함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제 감이 진범들을 잡아들인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감이 지민 앞에서는 반응하지 않았다. 저 눈을 보고 있는 이 순간에도, 계속. 이 정도면 범인이 아닌 거 같은데... 정국은 눈을 살짝 내리깔았고, 동시에 지민이 범인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렸다.



"저 목말라요."



정국은 눈을 들었다. 지민은 자신이 가지고 들어온 물잔을 보고 말하고 있었다. 정국은 말없이 지민에게 물잔을 밀어주었다. 마셔도 돼요? 형사님은 좋은 형사님이네요. 아까 그 형사님이랑 다르게. 정국은 지민이 물을 다 마시고 내려놓을 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고마워요, 덕분에."



정국은 별거 아니라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나 지민은 아뇨 물 말고요, 하고 말을 이었다.



"형사님은 나 범인 아니라는 거 믿잖아요."



지민이 눈을 휘어가며 웃어보였다. 속을 간파당한 것 같은 정국은 웃음을 보고서도 편하게 웃어줄 수 없었다.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정국을 알아차린 지민이 어 아닌가, 하며 옆머리를 긁적였다. 민망함에다가 얼핏 보이는 실망한 표정. 그 부분에서 정국은 저도 모르게 아니, 하고 입을 떼었다.



" '아니?' "

"아니, 그래도... 그런 걸 입 밖으로 꺼낼 수는... ,"



정국은 우물쭈물하며 덧붙였다. ...유력한 용의자 앞에서. 그러자 지민이 아하하 하며 웃었다. 몸을 바싹 끌어당긴 지민은 양 손으로 턱을 받치고서는 말끔한 눈동자로 정국을 바라보았다. 한참동안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던 정국은 먼저 지민의 시선을 피했다.



"형사님 되게 좋은 분 같아요."

"........."

"저 정말 억울해서 할 수만 있다면 창문 열고 뛰어내리고 싶었거든요."



여기는 창문이 없어서 그렇게는 못 했지만. 정국은 홀린 듯이 지민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실종된 사람들 말이에요, 빨리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혹시 누가 알아요? 정말로 그들이 단체로 여행갔던 거여서 오늘 돌아올 지. 그 때, 마이크가 온 되는 소리와 함께 취조실 스피커에서 윤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만하고 나와, 전정국.







"동정하지 말랬더니 동조를 하고 있어?"

"선배,"



말하려고 했던 정국의 입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올리는 윤기의 행동에 다물렸다. 정국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절 쳐다보는 윤기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내렸다. 입술은 꼭 다물리고 주먹도 쥐어진 채였다.



"네 감이 좋은 건 나도 알아. 실제로도 몇 번 네 감으로 진범을 잡았던 적이 있으니까. 나도 전적으로 지지해줬고."

"........"

"그런데 이번만큼은 아냐."

"왜요?"



저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갔다. 정국은 윤기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지민이 실종된 사람들과 공통적으로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들은 찾아내었지만 그게 다였다. 다른 이상한 점을 찾을 수가 없었으니까. 별것들도 아닌 증거들로 애먼 사람을 붙잡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선배. 저는 정말로 우리가 애꿎은 사람을 가둬두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증거들이,"

"정말로 확신해요?"



이번에는 윤기의 입이 다물렸다. 정국은 대답하지 못하는 윤기의 얼굴을 보면서 하, 하고 웃음을 뱉었다. 그것 봐, 선배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취조실 안에 있는 저 남자가 어떻게 유력한 용의자라고 밀고 있느냔 말이죠. 윤기는 종이를 꽉 쥐고 있는 정국의 손을 바라보았다.



"선배."

"........."

"선배도 그 직감이란 거, 떼놓고 생각해요."



정국이 조용하게 내뱉었다. 애먼 사람 더 잡지 말고. 윤기는 말없이 멀어져가는 정국의 등만을 바라보았다. 취조실 안에 남아있는 지민은 정국이 놓고 나간 컵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몰래 먹을것을 가지고 취조실로 내려온 정국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서 문고리를 돌렸다. 윤기의 허락없이 들어온 거라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지만 정국은 부러 가슴을 폈다. 지민은 전날 보았던 것처럼 의자에 앉아있는 대신 구석에 모로 누워 있었다. 지민은 자고 있었다. 정국이 앞에 쪼그려 앉아서 조용히 그를 흔들었다. 그러자 잠시 후에 지민은 비비적거리며 눈을 떴다.



"...형사님?"



정국임을 확인한 지민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저에게 내미는 먹을것과 마실것을 보고서는 더 환해졌다. 이거 저 주려고 가져온 거에요?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앉은 지민은 웃는 얼굴로 정국이 가져온 김밥을 뜯어 입에 집어넣었다. 우물우물. 형사님도 하나 드세요. 고개를 저었지만 입가에 디밀어주는 지민의 손에 정국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어 받아먹었다. 지민의 눈이 살짝 접어졌다. 형사님,



"토끼 닮았어요."



정국은 응? 하는 표정으로 지민을 바라보았다. 지민은 제 앞니를 톡톡 치며 말했다. 앞니가 톡 튀어나와 있어서. 정국은 아, 하며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어릴 때부터 자신과 닮은 동물을 대라고 하면 토끼는 꼭 들어가 있었다. 이유도 비슷했다. 톡 튀어나온 앞니, 콤플렉스였다. 어두워지는 얼굴을 눈치챈 지민은 먹다 말고 물었다. ...제가 말 실수 했나요?



"미안해요."

"아니..."

"형사님은 절 위해 먹을 것도 가져오셨는데 쓸데없는 말로 불편하게 만들고."



지민은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내렸다. 그러다가 생각났다는 듯 입을 열었다. 형사님 여기 들어와도 괜찮은 거에요? 어제 하얀 형사님이 토끼 형사님은 못 들어오게 한다고 그랬는데.



"난 속내를 알 수 없는 나쁜 놈이라 형사님같은 사람은 쉽게 물들 거라고 했어요."

"..........."

"그리고 벌써 물들여 놨다고 욕했어요."

 


지민이 조용하게 중얼거리며 정국을 바라보았다. 나쁜 사람, 아닌데. 지민은 다시금 중얼거렸다. 정국이 말을 않자 지민은 반쯤 먹다 남긴 김밥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집에 메리 혼자 두고 나왔는데. 메리는 내 강아지에요. 분명히 배고파할 텐데.



"집 가고 싶어요. 바닥 딱딱해서 제대로 못 잤어요, 잠자리 가려서."



어깨를 통통 두드리며 지민은 얼핏 웃어보였다. 빨리 가서 메리 밥 주고, 씻고 푹 자고 싶어요. 그 때였다. 취조실이 열리는 소리가 나자 정국은 고개를 휙 돌렸다. 안으로 들어오던 윤기는 정국이 여기 있을 것을 예상하지 못한 듯 눈썹이 치켜올라가 있었다.



"네가 여기 왜,"

"선배, 잠깐 이야기 좀 해요."



정국은 윤기를 끌고 취조실을 나왔다. 쾅 하고 문이 세게 닫히자 정국은 윤기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왜 그런 표정이냐. 침착하게 물어오는 윤기에게 정국은 날선 목소리로 또박또박 쏘아붙였다.



"선배 아주 잘못하고 있는 거에요. 나는 누구에게 물들여질 정도로 나약한 놈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저 사람은 누구를 물들일 인간도 못 돼요."

"........."

"나를 못 들어오게 한다고요? 배제시켜놓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얼마나 더 잡아 족쳐서 원하는 걸 얻어낼...!!"

"그래, 내가 잘못했어."

"수...네?"



막 쏘아붙이려던 정국은 윤기의 사과에 귀를 의심했다. 다음으로 들려오는 말은 정국의 두 눈을 커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젯밤, 실종되었던 사람들 모두가 돌아왔다."





하루 사이에 실종되었던 사람들 전부 돌아왔다고 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대대적인 수사를 펼쳐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멀쩡하게 돌아왔다. 이렇게 된 이상 더 이상 지민을 잡아둘 의미가 없었다. 아니, 잡아두면 안 됐다. 자유의 몸이 되어 서를 나가려던 지민은 나가다 말고 몸을 돌았다. 정국은 지민이 저를 향해 다가오자 눈을 깜박였다. 앞까지 다가온 지민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말로 그 사람들 단체로 어디 여행이라도 갔다왔나 봐요, 그죠?"



정국은 슬쩍 웃어보였다. 사건이 일단락 된 건 맞았지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앞으로 며칠동안 그들을 일일히 만나 물어볼 생각을 하니 머리가 조금 아파왔다. 지민은 정국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펜을 가리켰다. 잠시 빌려써도 되나요? 정국의 손에서 펜을 받아든 지민은 정국의 손을 펴서 손바닥에 열한자리의 숫자를 적어주었다.



"그거 제 번호."

"...?"

"형사님이 저 믿어줬잖아요. 감사해요. 김밥 대접도 감사해서 밥 한번 사려고요."

"아니 괜찮은데..."

"서 밖에서 봐요. 연락해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좋은 하루 되세요, 토끼 형사님.


정국은 손을 흔들고 멀어져가는 지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손바닥에 시선을 주었다. 괜찮을까...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어느새 손은 핸드폰으로 받은 번호를 옮겨적고 있었다.




* *



- 메리 밥 줬어요 하루 못 봤다고 엄청 반가워하더라고요


- 형사님 피곤할텐데 힘내세요 화이팅


- 오늘도 좋은 하루 되세요 그리고 시간 나면 말해주세요


- 형사님 저 정말 감사해서 그래요 믿어주셨던 게 너무 감사해서




- ...아뇨,


- 사실은요


- 형사님 얼굴 다시 보고 싶어요



* *




"어디 가?"



셔츠를 단정하게 내리고 나가는 정국을 보고 동료가 물어왔다. 저 퇴근해요. 퇴근?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한 동료의 표정이 더더욱 놀라운 표정이 되었다. 직업 특정상 정해진 출퇴근이 불가능했는데, 저녁 7밖에 안 되었는데 퇴근이라니. 그런 의문을 또다른 동료가 해소해주었다.



"데이트 간대."

"데이트는 무슨!"



정국은 무서운 속도로 받아쳤지만 그 꼴은 더더욱 데이트라는 말에 확신을 실어주기만 했다. 며칠 전부터 핸드폰 보면서 비죽비죽 웃고 있더니만. 데이트 가는 거 확실해.



"참한 사람 꼭 잡아야 한다 막내야? 화이팅!"



화이팅은 무슨. 정국은 홧홧해지는 귀를 감싸며 재빨리 계단을 내려갔다. 저렇게 다들 주책바가지니까 저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못했지. 정국은 지민과의 예정된 약속을 떠올렸다. 그로부터 2주일 만이었다. 바빠서 계속 시간을 못 냈는데, 사건도 얼추 마무리되고 보상으로 시간이 나자 동료들도 오랜만에 가족들과 밥이나 해야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정국은 같이 밥을 먹을 가정은 없었지만 그 시간을 지민에게 쓰기로 결정했고 오늘에서야 그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형사님!"



정국은 뒤로 돌았다. 지민이 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앞까지 걸어온 지민이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못 먹는 거 있으세요? 고개를 젓자 싱긋 웃으며 말한다. 다행이다. 미리 예약해두었는데 혹시나 해서요. 가요.


물을 마시던 정국은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았다. 어둑어둑해진지 오래라 지금 앉아있는 레스토랑의 높이와 비슷한 고층 건물들이 반짝이는 것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입에 맞아요? 정국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밥과 음료수로 대접했던 게 레스토랑에서의 고급스러운 식사만큼의 값어치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려운 사건이라도 있어요? 얼굴이 좀 상한 거 같은데."

"아.. 그래 보여요?"



정국은 피부를 만지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신경쓴다고 스킨도 꼼꼼하게 바르고 나왔는데. 그리 어려운 건 아니었는데, 밤을 새느라 그랬나 봐요. 그래도 마무리되어서 이제는 괜찮아요. 정국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지민이 문득 입을 열었다. 맞다, 저 궁금한 거 하나 있었는데. 물어봐도 돼요? 메스컴에서는 제대로 말을 안 해서요. 그냥 실종자들을 다 찾았다는 말만 휙 지나가고. 제가 휘말렸던 사건이여서 너무 궁금해졌거든요.



"그 사람들 왜 사라졌던 거래요?"

"그게 좀 이상해요."

"이상해요?"

"네. 제가 다 만나봤는데 그들은 자기가 최소 5일부터 최장 한달까지 사라졌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그동안 자신들은 멀쩡하게 회사를 다니고, 학교를 다니고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정국은 그들과 만난 기억을 떠올리며 찜찜한 기분으로 말을 마쳤다. 실종자들중 한 명도 빠짐없이 그렇게 주장했다. 자기는 매일 하던대로 행동했는데 어찌된지 주변 사람들은 자기더러 그간 실종되었다고 하더라고, 영문을 모르겠다고.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피해자가 없어서 사건은 흐지부지 종결되었지만 정국은 그 부분이 석연찮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그래서 강력한 최면에 걸린 게 아니냐는 말도 나왔었어요. 이해가 안 되어서. 정말 이상하잖아요."



정국은 피식 웃으며 물을 마셔서 일순간 서늘해졌던 지민의 눈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게요... 정말 이상하다. 지민은 정국의 말을 따라했다. 어쨌든 이제 그걸 신경쓰는 사람은 없다는 거네요. 그렇죠. 기상천외한 해프닝에 매달리기에는 강력 범죄들이 하루달리 나타나니까요.


그 뒤로 식사는 평화롭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 지민과 함께 레스토랑을 나오면서 정국은 이쯤에서 헤어져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고민했다. 일적 외로 사람을 만나는 건 오랜만인지라 어떻게 대하는지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갈팡질팡하고 있던 정국은 산책하러 가자는 지민의 제안에 깊은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걷다 보니 인적이 없는 공원까지 도달했다.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지민의 말에 정국 또한 시간을 확인했다.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내일 제시간에 출근하려면 아쉽지만 이쯤에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정국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지민에게 말하려 하다가, 지민이 말을 꺼내자 귀를 기울였다.



"그거 알아요? 형사님 처음 봤을 때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마냥 토끼 같아서."

"아...."

"그래서 일부러 유인했어요. 형사님같은 피가 끓어넘치는 사람은 별거 아닌 것도 달려들 거 같아서."



대화가 이상했다.



"처음에는 그들을 족족 죽여버려서 형사님이 나를 끈질기게 찾게 만들고 싶었는데, 마음을 바꿨어요. 첫인상은 순수하게 남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조종했어요. 잠시동안 세상과 떨어져 있다 오자고. 아,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겠나요?"



지민이 고개를 슬쩍 기울이며 웃었다. 나는 특별한 능력이 하나 있어요. 강력한 마인드 컨트롤이죠. 자기 자신조차 잊게 할 수 있을 만큼, 뭐 그런 거요.



"계획대로였죠. 형사님은 나는 절대 범인이 아니라고 확신했잖아요."

"..........."

"불쌍하다고 먹을 것도 갖다주고."



어둠 속에서 지민의 눈동자가 서늘하게 빛났다. 집착과 욕정으로 점칠된 눈동자였다. 정국은 뒷걸음질쳤다. 아니, 뒷걸음질을 치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부터 누가 제 몸을 통제하고 있는 듯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민윤기 말 듣지 그랬어..."

"..ㅇ...."

"그러면 이렇게 안 됐을지도 모르지만."



허리와 팔을 단단히 붙든 지민이 혀를 내밀어 정국의 목덜미를 천천히 핥았다. 그러다가 피식 웃는다. 그래도 그 놈 눈치가 빠르긴 하더라. 네가 벌써 나한테 물들여진 거 알고 떼내려 했어.



"눈치빠른 새끼... 죽여버릴까."



지민이 웃는 소리가 목울대로부터 들려왔다. 정국의 목에 코를 박고 체향을 들이마시고 있던 지민은 덜덜 떠는 정국을 보고서는 신난 눈동자를 했다. 아, 좋아. 형사님이 날 선량한 사람이라도 착각한 것도 좋았지만 나는 날 무서워하는 게 더 취향인가 봐. 정국은 하체에 닿아온 묵직한 지민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다.



"정국이 이렇게 사람을 잘 믿어서 어떡해."

"..........."

"세상엔 믿을 사람 하나 없는데 말야."



정국의 얼굴을 진득하게 어루만지던 지민은 이내 얼굴을 붙잡고 키스했다. 질척하게 밀려들어오는 혀 속에서도 정국은 무력하게 받아낼 도리밖에 없었다. 정신은 다 깨어있는데,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이 상황에 미칠 것만 같았다. 한참동안 붙어있던 입술을 뗀 지민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정국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내일부터는 출근 안해도 돼요."

".........."

"아니, 못 하지."

 

 

내가 안 보내줄 거거든...

 

지민이 웃었다.




 

 

다음 날, 아홉 명의 사람들이 고층 빌딩에서 일제히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이 신문에 실렸다. 모두 오랫동안 실종되었다가 멀쩡하게 돌아온 사람들이었다. 한 날 한 시에, 같은 자살. 그리고 한 명이 실종되었다.


전정국 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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