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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사해(死海)

 

 

오늘 바다가 죽었다. 더 이상 이 바다에는 생명체가 살지 못한다. 정국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 들어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미약하지만 살아있었는데 이제는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사실, 이 바다가 곧 수명이 다할 거라는 건 다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바닷속을 걸어다니던 게들도 전부터 떠날 준비를 했고, 예쁘게 헤엄치던 물고기들도 이미 떠난 지 오래였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허어엉,"


끝내 닫혀있던 입술을 비집고 괴상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정국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빠르게 더러워져가고 있었다. 찰랑거리지 않고 잔잔한 바다속에 양 손을 담근 정국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통곡했다.




사해

- 부제: LOvE like Sea -


정국이 사는 행성은 지구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이었지만 아름다운 곳이었다. 넓은 들판과 바다가 있고, 두 개의 태양과 두 개의 달이 번갈아 가며 떴다. 정국의 행성은 지구인들이 말하는 에덴, 즉 낙원의 풍경과 비슷했다. 풀들이 자라나고 꽃들이 피어나며, 작은 생명체들이 주변을 날아다녔다. 정국은 그 행성에서 유일하게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생명체였다. 또한 말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이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은 제 말을 알아듣기는 하지만 어떤 언어로 내뱉지는 못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어느 날, 바다가 제게 말을 걸어주었으니까. 갑작스레 개구쟁이이고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정국은 주인이 누군지 곧바로 깨달았다. 그렇게 정국은 친구와 오래 살아왔다. 지구의 시간으로는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는 정도로.


그토록 오랫동안 제 곁에 있어주었던 친구였기에 슬플 수밖에 없었다. 정국은 훌쩍이며 코를 닦았다. 영원한 안식으로 떠나기 전, 바다가 말해준 게 있었다. 지구라는 행성에 가라고. 아주 오래 전 은하수를 여행하던 자에게서 말을 들었는데 지구라는 행성에는 바다가 아주 많이 있다고 했다. 정국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굳은 의지를 보였다. 싫다고,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너가 안 떠나면 되잖아! 지구따윈 가기 싫어!


정국은 두 다리를 모으고 앉아 대답이 없는 바다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친구가 죽은 지 일주일이 지났다. 말을 걸어도 대답해주지 않으니 쓸쓸하고 외로웠다.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지구'라는 단어에 눈이 잠시 땡그래졌지만 도로 가느스름해졌다. 안 갈 거야, 절대로 안 갈 거야. 괜한 오기였다. 그렇지만 바다는 정국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친구였다. 결국 정국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행성에게 인사를 했다. 풀들이 잘 가라고 흔들어주는 손들이 마음에 걸려 자꾸 뒤돌아보았지만, 이제는 아주 멀어져 그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정국은 배를 타고 은하수를 건넜다. 눈을 돌리는 곳곳에는 하얀색 강이 넘실거렸다. 가끔 파도가 거세서 어지럼증을 느끼기도 했다. 지구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고생할 때마다 정국은 괜히 행성을 떠나왔나 후회했다. 10년을 넘어, 마침내 배가 정착했다. 내릴 준비를 하며 정국은 선상 창으로 보이는 팻말을 읽었다. '지구'. 온통 푸른빛인 행성을 보자 가슴이 떨렸다. 여기에 오길 잘한 것 같았다.


뭐야 이거.


지구에 내려온 정국은 눈앞에 펼쳐진 풍경들에 그대로 굳었다. 저처럼 두 다리로 걸어다니는 생명체들이 많았다. 그리고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주 빠르게 달리는 것들도 있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거대한 날개달린 배들도 있었다. 배에서 읽었던 <지구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을 위한 가이드>에는 이런 장면이 실려있지 않았다. 무리도 아니었다. 정국이 읽은 안내서는 무려 200년 전의 것이었으니까. 제가 그리던 지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정국은 가방끈을 손에 꼭 쥐고 주춤주춤 물러났다. 아무래도 여기에 괜히 온 것 같았다. 옆선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입술을 질근질근 깨물고 차가 다니는 어지러운 도로변을 바라보던 정국은 갑자기 자신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에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뭔데, 뭔데!! 쌩하니 사라진 자리에는 야옹 하고 작게 운 고양이가 멀어져가는 정국을 멀뚱멀뚱 보고 있을 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정국은 심각한 얼굴로 안내서를 펴들어 다른 손으로 수정된 점을 열심히 고쳤다. 첫 번째, 이제 인간들은 마차 대신 자동차를 타고 다닌다. 비슷한 종류의 탈것으로는 기차, 버스, 비행기 등이 있다. 두 번째, 바다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지 않다. 인간들의 말을 훔쳐들으니 여기서 바다에 가려면 자동차로 꼬박 하루를 가야 한다더라. 세 번째, 탈것을 이용하려면 이용료를 내야 한다. 화폐 단위는 각 나라마다 달라서 잘 확인해야 한다. 정국은 손에 들린 우주 화폐를 바라보았다. 여기서는 쓸모가 없단 걸 확인했다. 그러면 어떻게 구할까? 곰곰이 생각하던 정국은 시끄러운 코골이 소리에 고개를 퍼뜩 쳐들었다.



"푸우- 푸우-."



술에 쩔은 남자가 벤치 위를 침대로 삼아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밑에는 그의 것으로 보이는 두툼한 지갑이 보였다. 정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쪼르르 가서 지갑을 집어들었다. 열자 두둑한 화폐가 눈에 들어왔다. 며칠동안 보아 낯익은 종이였다.



하루를 꼬박 차에 몸을 맡긴 정국은 운전수의 목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가득했던 사람들은 이미 다 내려 저를 빼고 아무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황급히 가방을 챙기고 내려온 정국은 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눈을 꾹 감았다. 잠에서 덜 깨 비몽사몽했지만 코끝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의 향기에 어물쩍 파업하려던 눈이 도로 떠졌다. 저 앞에 보이는 건, 하늘빛을 담은 바다였다.



"와...."



입에서 반사적으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친구가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정말로, 바다가 있었다. 그것도 자신이 있던 행성보다 더 크고, 더 깊고, 더 푸르른 바다가. 신난 정국은 가방도 집어던지고 와닥닥 달려가기 시작했다. 신발을 파고드는 모래알들은 부드럽기 그지없었다. 양 팔을 높이 치켜들고 온몸으로 바닷바랍을 느끼며 질주하던 정국은 파도에 닿기 직전 멈춰 섰다. 금방이라도 어서 오라며 파도가 제 발목을 잡아끌 것 같았다. 잔뜩 들뜬 눈빛을 하고 말을 던졌다.



"바다야!! 안녕!!! 네 이름은 뭐니?"



쏴아아아- 쏴아-.


 

"부끄러워서 그러는 거야? 좋아!!! 그렇다면 먼저 내 이름을 알려줄게!! 그럼 너도 알려줘야 된다?!"


쏴아아아아아-.

"내 이름은-!! 정국이야-!!"

 

정국은 힘껏 소리쳤다. 해변을 산책하던 커플이 이상한 눈으로 정국을 흝어보고 지나갔다. 그러나 바다에게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환했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바다야? 불러도 그저 모래사장만 일정하게 치고 지나갈 뿐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천천히 고개를 내려 파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다는 죽어 있었다. 아니, 애초에 살아있던 적이 없었다. 정국의 눈에 물이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웃기지 마. 이게 말이 돼? 믿을 수 없었지만 사실이었다.




전날 저녁 8시에 잠들어 엄청나게 숙면을 한 지민은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두 눈이 부어올라 눈이 아예 사라져 있었다. 비명을 지르고 놀라 방으로 뛰어온 해피가 자신을 몰라보고 왕왕 짖어대서 더 비참했다. 응급처치로 얼음팩을 눈두덩이에 대고 가라앉히자 그제야 주인을 알아봤는지 꼬리를 반갑게 흔든다. 이놈의 개, 어떡하면 좋지.


14시간이나 잠만 잤더니 몸이 그새 누워있는데에 적응해서 또 누울 기세였다. 결국 지민은 완전히 잠을 깰 겸 산책을 하러 나섰다. 햇살을 빛나 아름답게 빛나는 수면도 몇 년째 보면 별 감흥이 없다. 무념무상으로 해변을 걷던 지민은 어디선가 들리는 서러운 울음소리에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차였나? 가끔 본 적 있긴 했다, 사랑을 다지려다 사랑이 깨지고 돌아가는 커플들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건 그다지 좋지 않지만 이렇게 서럽게 우는 건 처음 들었다. 궁금증이 든 지민은 원래 가려던 산책로를 조금 틀었고, 얼마 가지 않아 서럽게 우는 주인공을 발견했다. 검은 머리의 한 남자였다. 그것도 바다 앞에서 불쌍하게 무릎을 쪼그려뜨리고 울고 있다.


어떡해 차였나 봐...


지민의 눈썹이 아래로 축 내려갔다. 남자의 앞모습을 보지 않아도 눈앞에 저절로 그려졌다. 자신도 쓰디쓴 이별을 겪은 적이 있었기에 남자의 심경을 조금 짐작해봤다. 이별을 통보받았을 땐 정말 세상이 두 쪽 나는 것만 같다. 심장이 뽀개지는 것 같고, 그사람 없는 내 미래를 그릴 수가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더라. 찌질하지만 펑펑 울고, 욕도 해 보고, 구질구질하게 미련투성이로 살다가 보면 어느 순간 딱 기억에서 잊혀져 있더라. 아무렴, 그렇지. 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 남자도 지금 당장은 원망스럽고 절망투성이겠지만 곧 깨달을 거... 어...? 지민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울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설마, 자살?!



"안 돼요!!"



너무 극단적인 선택이지 않은가. 이별이 아프고 고통스럽다고 바로 죽으시면 안 돼죠!! 그리고 가까이에 내 집이 있는데 죽으면 내 집에 한을 풀어달라고 오는 건 아니죠?! 지민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있는 힘껏 달려가 바닷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남자를 잡아끌었다. 단단하게 잡히는 팔뚝과는 다르게 몸은 쉽게 제 쪽으로 끌려왔다. 급작스레 잡힌 손에 놀라 돌아보는 남자의 얼굴을 마주하며 지민은 말했다.



"슬픈 건 알겠지만, 자살은 안 돼요!!"

"자살...?"



울먹이던 남자의 눈이 지민을 향했다. 어, 눈동자가 이렇게 반짝거릴 수 있나. 남자의 눈을 본 순간 떠오른 문장이었다. 실례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으나... 물망초 같았다. 3초쯤 멍하니 정국을 보던 지민은 또 다른 의문점이 들었다. 음? 왜 신발이 젖은 느낌이 안 나지? 분명히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남자를 잡았는데. 그리 생각하여 눈을 내렸는데 바닥에는 물이 없었다. 아니, 자세히 말하자면 물이 양 옆으로 갈라져 있었다. 모세의 기적처럼. 헐. '헐' 하기가 무섭게, 파도가 2m쯤 쑥 올라서더니 지민을 덮쳐버렸다.



지민은 다 젖은 옷을 갈아입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의자에 앉아 맞은편에 앉아있는 정국을 아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분명히, 바다를 갈랐다. 반으로. 심지어 자기는 쫄딱 젖었는데 이 남자는 젖은 흔적 하나 없다. 머릿속에는 초등학교 때 친구 따라 딱 한 번 갔던 교회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지민은 여과없이 내뱉었다.



"예수...?"

"그건 뭐예요?"



땡글땡글한 눈이 물음표로 가득 찬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찜찜함은 가시지 않았다. 일부러 아닌 척 하고 내가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노해서 천벌을 내리진 않을까. 지민의 망상은 정국이 설명하고서야 간신히 중단됐다. 예수님이 아니라는 건 알겠지만... 어딘가 과대망상증이 있는 사람 같았다. 친구가 죽었는데, 그 친구가 바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찰랑찰랑 파도가 치고 물고기가 헤엄치는 바다. 그 전에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했다. 게다가 지구를 오는 데에 배를 타고 왔다고 한다. 아 대체 무슨 만화의 광팬인거지 이 남자는?! 원X스나 은X 혹시 그런 걸까. 속으로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지민은 풀 죽은 모습으로 묻는 정국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런데 이곳의 바다는 아예 처음부터 살아있지 않더라고요."

"아, 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제가 압니까...? 뭐 씹은 표정의 지민과는 다르게 정국은 쉬지 않고 입을 놀려댔다. 들으면서 확신이 갔다. 이 남자는, 맛이 갔다. 빨리 경찰이던지 병원이던지 전화해서 데려가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지민은 정국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조심조심 일어나 전화기를 향해 걸어갔다. 그 때였다. 해피가 정국의 곁으로 쪼르르 다가갔다. 주변을 빙빙 돌면서 엉거주춤한 자세를 잡는데, 삘이 왔다. 놀랄 만한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실례는 밖에서 해야지."



지민의 시선을 따라 아래로 내린 정국이 해피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해피의 양쪽 귀가 쫑긋 올라가더니, 정국을 한 번 쳐다봤다. 도리도리 고개를 젓는 정국에 멍! 하고 짖고서는 베란다로 총총 걸어간다. 지민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해피는 무척 귀여운 강아지였고 해피를 통해 정말 행복했지만, 하나 힘든 점은 배변을 잘 가리지 못한다는 거였다. 그런데 방금 본 건 뭐란 말인가. 게다가 정국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지민은 번호를 누르지 못하고 도로 내려놓았다. 진짜 뭐지, 저 남자.




모르면 뭐 어떠냐.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지민은 콧노래를 부르며 청소를 하는 정국을 바라보았다. 그날 바닷가에서 데려온 이후로 얼떨결에 같이 살게 되었는데, 이상하기는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어 보였다. 그래, 나쁜 사람만 아니면 됐지. 지민은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저랑 비슷해 보여 나이를 물어봤더니 한참을 고민하다가 500살 넘어서부터는 나이를 세는 걸 까먹어서 정확하게는 모른다고 했다. 하여튼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풀들한테도 말을 걸고, 심지어 벽에도 말을 건다. 그새 정국의 말에 익숙해져 얘네들은 말을 못한다고 해줘야 그만뒀다. 그래도 뭐... 지민은 큰 눈을 깜박이며 절 부르는 정국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생각했다. 그래도 뭐, 귀엽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하는 행동이 때묻지 않아 순수하고 귀여웠다. 제 입으로 말한 500살 어쩌고나, 자신의 나이인 27살로 쳐도 그렇다. 어린아이처럼 하나하나에 신기해하고 반응도 그만큼 신선하고 큼직큼직하다. 여기까지 온 과정도 들어보니 과감하고 대단하지 않았던가. 딱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이 할 발상이었다. 구제해주는 셈 치고 머무르게 했는데 잘 한 선택이었다. 요새 심심할 틈이 없다. 지민은 해변가에 앉아서 갈매기에게 뭐라 말하는 정국을 바라보았다. 또 말을 거는 모양이였다. 그러고보니 해피 일도 있고, 바다니 식물이니 그런 건 모르겠는데 동물들이 정국이 하는 말을 무척이나 잘 따르긴 했다. 실은 애니멀 커뮤니케이터 이런 걸까. 정국이 온 뒤로 집 안이 해피의 실례로 더러워지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이상해도 귀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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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집에 같이 사는 사람이 좀 이상한데 괜찮을까요?


사정상 모르는 남자랑 같이 살게 됐는데 어딘가 이상해요. 나이가 몇이냐고 물어봤더니 500살이 넘었대요. 장난하는 것 같지도 않아 보였고 뭔 행성? 거기서 왔대요. 생긴 건 진짜 멀쩡한데. 아 그리고 풀에다가도 말을 걸어요... 그리고 믿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남자 바다를 갈랐어요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작지만, 쫙... 꿈 아니거든요. 또 저희집 강아지랑 대화도 해요


ㄴ소설은 소설방으로

ㄴ~날아오르라 주작이여~

ㄴ뭐야ㅋ외계인 아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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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은 진지한 얼굴로 커뮤니티에 달린 답글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눈은 마지막으로 달린 덧글에 가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외계인의 존재를 믿어본 적 없었다. 왜냐하면 외계인의 유무를 따지고 토론하는 일보다 자기 앞가림 하기에도 바빴으니까. 지민은 양 손을 가지런히 모아 한 번 외계인의 모습을 그려봤다. 단박에 머리는 크고 팔다리는 매우 가는 괴생명체가 떠올랐다. 영화 속의 외계인들에 노출된 탓이다. 머릿속으로 정국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사람이다. 아니, 외계인인가? 머리가 아주 복잡해졌다. 이상한 사람이면 몰라도, 지민은 외계인을 집에 머무르게 할 생각이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지민은 해피랑 놀고 있는 정국을 불렀다.



"당신 진짜 외계인이에요?"

"그게 뭔데요?"

"지구 말고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

"그게 외계인이에요?"

"그럼 당신은 외계인이냐구요!!"

"그런 것 같은데!"


  

동글동글한 대답이 날아온다. 그래도 이제는 돌아갈 생각 없어요! 친구를 만들기 위해 지구로 왔는데, 비록 처음 생각한 친구는 아니지만 새로 생겼으니깐요! 반짝반짝한 목소리가 향하는 건 분명히 자신이다.



"누가 당신 친구에요?"

"당신이요."

"내가 언제 그랬어요?"

"...아니에요?"



후두둑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진다. 조금 거절당한 말에도 정국은 세상을 잃은 듯 줄줄 눈물을 쏟아냈다. 지민은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었다, 그러니까 저렇게 슬피 울 만큼 잘못하진 않았다. 그러나 엄청난 중죄를 지은 것 같았다.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절 똑바로 바라보면서 소리없이 눈물만을 주륵주륵 쏟는데 피할 수가 없었다. 결국 지민은 정국을 내쫓지도 못하고, 친구라고도 인정해야 했다.



요즘들어 지민의 눈 밑에는 검은 그림자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 집에 같이 살고 있는 외계인 탓이다. 그 사건 이후로 충분한 이야기를 나눈 결과 지민은 정국이 외계 행성에서 왔다는 걸 받아들였다. 정국이 첫날 보인 힘도 어떻게 한 지 알아냈다. 바다라는 생명과 친화력이 깊었기에 지구의 바다에서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해피랑 대화 비스무리하게 한 것도. 정국의 행성에서 두 다리로 걷는 건 정국 혼자만이라고 했다. 그리고 정국은 바다를 포함한 그 행성에서의 생명체와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니까, 정국은 따지자면 거기서 신이었다.


그 외계인이든, 신이든, 정국이든. 어쩌면 좋냐 절망적인 건 마찬가진데. 지민은 양 손으로 머리칼을 마구 쥐어뜯었다. 이렇게 자학적인 행동을 벌이는 데에는 지민의 신체기관의 일부가 말썽을 부리는 탓이었다. 물론 어디 병이 있다거나 그런 게 아니고, 감정상의 말썽 말이다. 언제부터 정국만 보면 심장이 맘대로 전력질주를 하기 시작했다. 둥둥둥 당라랑당당 하고 신나게 북을 쳐대는데 어찌나 시끄럽고 빨리 뛰던지 가슴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내가 저 외계인을 좋아한다고? 처음에 부정하던 지민은 결국 인정했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눈치없는 정국 때문에 미쳐버릴 노릇이었다. 지구의 생활에 익숙해진 정국은 친구를 더 사귀고 싶다며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는데, 엉뚱한 면이 있어도 얼굴이 여간 잘생긴 게 아닌지라 남자든 여자든 줄줄이 달고 오는 것이였다.



"여기! 오늘 사귄 새 친구들이야!"



정국은 뿌듯한 얼굴로 지민에게 데려온 사람들을 소개했다. 하지만 다들 절 보기는 커녕 정국만 보고 있다. 눈에 다 사심이 어려있는 게 보인다, 이놈들아. 다 자신의 경쟁자들이라고 생각하니 곱게 보일 리 없었다. 지민은 악수를 건네는 존의 손을 꽉 잡았다. 존도 웃고 있지만 덩달아 세게 잡아온다. 육두문자가 입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돌아다녔다. 퍼킹 유! 속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대여섯번 날린 지민은 그러나 다음으로 나오는 말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정국, 네 남친이야?"

"응? 친구야!"

"그냥 친구?"

"응! 너도 친구, 여기 있는 사람 다 친구!"



해맑게 웃는 저 외계인의 멱살을 붙들고 짤짤 흔들며 외치고 싶다. 난 아닌데!! 난 아닌데!!! 난 남자친구 되고 싶은데!!!!!!



새로 사귄 친구라는 작자들과 술배틀을 했다. 정국은 맛이 없다고 알코올에는 별 입도 대지 않고 안주만 계속 집어먹고 있었으나 지민은 존과 눈싸움을 하며 술잔을 챙 하고 부딪혔다. 원더풀 나잇!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소리에 또 가운뎃손가락을 날렸다. 테러블 나잇이다. 눈치없는 정국에 속이 상해서 벌컥벌컥 들이켰더니 금방 머리가 띵해졌다. 그렇지만 경쟁자 앞에서는 티도 내지 않았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지는 거니깐. 그만 가자며 정국을 데리고 술집을 나오는 와중에 발이 꼬여 바닥과 키스할 뻔 했지만 간신히 면했다. 두 명으로 보이는 정국과 같이 집으로 온 지민은 재밌었다! 라고 말하는 정국에 고개를 끄덕였다.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어서 정말 좋더라. 너도 친구들 좋지? 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더라. 내일은 더 많이 불러올게! 순간 억울함과 화가 치밀었다. 오늘 소개한 사람들도 총 여섯 명이다. 더 많이? 스무 명이라도 불러올 참인가? 이러다가 아예 전 지구의 사람들을 친구라고 소개할 참이었다.



"이 외계인아!!"



집에 돌아온 지민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큰 소리에 깜짝 놀란 정국이 움칠했다. 술에 쩔어 억울한 감정만이 극에 달한 지민은 필터링없이 바로바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단어로 변환해 내뱉었다. 무슨 친구를 이렇게 많이 사귀는데!! 아예 70억 인구를 다 친구라고 하지 그래?!! 친구?! 하!!! 싫어!! 나는 친구!!! 싫다고!!! 앞에 남자라는 단어가 붙었으면 좋겠다고!! 남자친구가 무슨 뜻이냐면 말이지!! 애인이라는 뜻이야!! 그리고 애인은 서로를 좋아해서 사귀는 두 사람이라는 뜻이고!! 그리고오...!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어젯밤 박지민이 한 일을 구하시오. 20점. 지민은 벽에 머리를 박았다. 너무나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술 취해서 어제 정국한테 뭐라고 말을 했는지. 이럴 때 필름은 왜 안 끊기냐. 창문을 열고 깨끗한 아침햇살을 배경으로 뛰어내릴 준비를 하던 지민은 쾅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정국이 문앞에 서 있었다. 아주 단단히 결심한 눈빛으로. 성큼성큼 걸어온 정국이 입을 열었다. 어젯밤 설명 잘 들었어. 내가 한 발언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아.



"넌 내 애인이야."



하늘로 날아올랐던 기분이 추락하는 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룻밤만에 친구에서 애인으로 격상되어 구름을 걷고 있는 지민은 눈앞에 어제와 같이 여러 사람을 대동한 정국을 보았다. 또 새로 사귄 친구들이겠지. 그래도 화가 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정국이 자길 애인이라고 했으니까. 지민은 뿌듯한 얼굴로 흘러나오는 저에 대한 정국의 설명을 들었다.



"여긴 내 애인이야."

"안녕하세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악수를 먼저 권하던 지민은 다음으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절 톡톡 치며, 새로운 사람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말하는 전정국.



"그리고 여기는 내 애인들이야."





지민이 아주 상처받았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정국은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정말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싸늘하다. 지민이 제게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왜 그래? 잡아도 지민은 맥없이 제 손을 떼어내고 뒤돌아섰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등을 하염없이 볼 수밖에 없었다. 왜?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떠올려봐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정국, 방금 장난친 거야?"

"뭐가?"

"남자친구 화난 거 아냐?"



네가 우리들더러 애인이라고 해서. 그 말에 옆에 있던 사람도 덧붙였다. 아니면 남자친구가 뭐 잘못해서 역으로 돌려준 거야? 그래도 많이 상처받은 거 같은데, 따라가는 게 좋지 않을까. 영문을 모르는 정국은 어젯밤 들었던 말의 일부분을 꺼냈다. 너희 애인 맞지 않아? 서로 좋아해서 사귀는 사람들이라고 하던데, 애인이라는 게.



"뭐? 틀린 건 아닌데... 우리는 네 애인이 아냐."



정국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참동안 그들에게서 애인이 뭔지, 남자친구가 뭔지, 사랑은 뭔지 이해가 되고 나서야 아주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집으로 왔을 때 불은 어디에도 켜져있지 않았다. 집 안이 온통 우울속에 잠겨 있다. 1층에 지민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정국은 2층으로 올라갔다. 지민은 제 방에 있었다. 지민아. 부르는 목소리에도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앞으로 걸어가서 멈췄는데도 절 보지 않는다. 정국은 오면서 줄곧 생각했던 말을 꺼냈다.



"친구들 두고 왔어."

"애인들이 아니라?"

"친구야. 친구랑 애인의 차이점을 몰라서 그렇게 말했던 거야."

"너는 애인이 뭔지 정말 알기나 하고 말하는 거야? 나랑 같은 마음도 아니면서. 그래, 애초에 다른 세계에서 왔던 너니까 다른 식으로 이해했다고 생각했어야 하는데. 됐어. 나 혼자 착각한 거니까. 오늘 하루만 내버려 둬. 내일은 밝아질 거야."



자신에게 있어서 지민은 지구에서 만난 첫 번째 친구였다. 친구, 그래 친구. 제 행성에서는 친구라는 단어밖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좋아하는 상대를 표현하는 단어가 친구라는 것밖에 없었으니까. 지구에서 더 많은 관계들을 늘려가면서 그들에게도 지민과 똑같은 친구라는 단어를 붙여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이제 확실하게 알았다. 지민은 친구라는 단어로 표현해내기에 부족하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알았다. 이해했다. 바다를 사랑했다. 그리고 바다를 사랑했듯이 지민을 사랑한다. 정국은 고개를 돌리고 있는 지민의 볼을 붙잡고 저를 향해 돌렸다. 돌직구로 입술을 맞댔다. 전혀 감기지 않은 두 쌍의 눈동자들이 시선 교환을 했다. 상황을 파악한 지민이 정국의 어깨를 잡고 떼어냈다.



"방금 뭐 한 거야?"

"애인끼리 하는 일이라며. 그런데 이 뒤는 모르겠어. 설명을 다 안 듣고 와서."



덤덤하게 말하고 있었는데 자꾸만 간질거리는 게 튀어나오려 했다. 정국은 절 빤히 바라보는 지민을 똑같이 빤히 바라보았다. 너... 지민이 뭔가를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빠르게 닫으며 말을 바꿨다. 이 뒤를 모른다고? 응, 몰라. 지민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그대신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굴러다녔다. 그러다 딱 저를 보고 멈춘다. 놀래라.



"다 알고 왔다고, 그래서 방금 나한테 한 거지. 근데 이 뒤를 모른다고, 아씨...몰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지민이 어딘가 이상해보여 물어보려는 찰나 입술이 맞닿아왔다. 그런데 방금과는 달랐다. 지민의 눈이 감겨 있었다. 그리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말캉한 무언가가 입술을 톡톡 쳤다. 의문을 가지는 사이 지민의 손이 자신의 눈을 덮었다. 아래로 스르르 쓸어내리는 손을 따라 눈꺼풀이 감긴다. 맞닿은 입술 사이로 부드럽고 말캉한 게 밀려 들어온다. 뭐랄까... 이상했다. 그런데도 입 안을 유영하고 다니는 체온을 자꾸만 따라가게 된다. 어쩐지, 기분이 좋아져서, 더워지기 시작해서.

 

 


미국의 남동쪽에 있는 플로리다주, 그중에서도 팜비치 지역의 해변에 어떤 집 하나가 있다. 수면에 반사되는 태양광처럼 흰색으로 도배된 그 집에는 두 명이 산다. 두명 중 하나는 지구에서 태어났고, 다른 하나는 다른 행성에서 태어났지만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들은 애인사이니까. 여름철이면 뉴스에 무서운 손님으로 보도되는 해일이나 토네이도 또한 이 부근에서는 더 이상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바다를 사랑하는 외계인이 지켜주고 있으니까. 아주 사랑스럽고 귀여운 외계인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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