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일반 사람들보다 몇십 배의 뛰어난 신체능력과 고유의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센티넬'과, 그런 센티넬들이 폭주하지 않도록 옆에서 지켜주는 '가이드'. 지민은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어떤 누구보다, 정확하게. 그 이유는 지민이 가이드로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박지민은 특별한 힘을 가진 센티넬들이 폭주하지 않게끔 하도록 하는 힘을 가진 가이드였다. 전체 인구의 0.1%도 채 되지 않는 센티넬들이었지만 그런 센티넬들이 가진 힘은 어마어마했다. 국가에서는 그런 센티넬들이 힘을 악용하지 않도록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철저히 관리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심지어 센티넬 그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을 전부.
단순하게 생각하면 보통 사람들에 비해 월등한 힘을 가진 센티넬들이 최상위 계층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센티넬이 서서히 사회에 나타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들을 두려워했다. 센티넬이 가진 힘은 방대했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몹시 다행스럽게도 그들의 숫자는 지극히 적었으므로 평범한 사람들은 머릿수로 밀어붙여 센티넬들을 하위 계층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법안이 빠르게 통과되고, 센티넬들은 의무적으로 그들이 발현을 한 시기부터 국가에 귀속되었으며, 그것이 진행되는 사이 본인의 의사는 기각되었다.
방대한 힘을 가지고도 노예 계층이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센티넬들에 대해 배우던 때, 지민은 자신이 센티넬이 아니라 가이드인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몰랐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모두 하지 못한 채 다수의 행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창창한 날에 죽어야 하는 개 같은 인생을 살았을 테니까.
"안타깝게도, 잘못 태어난거지."
커피를 마시던 태형이 어깨를 들썩이고서는 대답했다. 대답을 들은 지민 또한 묵묵히 커피를 마시기만 할 뿐, 별다른 말을 달지 않았다. 그들이 걸어가는 곳은 센티넬 기관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공원이었으며 날씨 또한 맑고 창창했다. 마음껏 이용되다가 죽는 거잖아, 순 개죽음이지. 태형이 신랄하게 비꼬고서는 다 마신 커피를 휴지통으로 집어 던졌다.
"그래서 어떤데?"
"응?"
"네가 전담 맡은 애 말이야. 정국이."
"아."
태형의 질문을 받은 지민이 멍하니 말을 흘렸다. 가이드이긴 하지만 전담은 한번도 맡은 적 없는 지민이 전담을 맡게 된 어린 센티넬이었다. 지민은 머릿속으로 정국에 대한 것들을 찬찬히 떠올렸다. 전정국. 20세. 등급 SS.
전정국은 센티넬이었다. 그것도 현존하는 센티넬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센티넬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마저 모두 덮어버릴 만큼 큰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정국에게 맞는 파장을 가진 가이드를 오랫동안 찾지 못했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폭주 상태 직전까지 간 적이 몇 번 있었으며, 그 때마다 매번 가이드를 죽이고 말았다. 국가는 그런 정국을 큰 골칫덩어리로 여겼다. 차라리 죽여서 없애버리는 게 일에 더 지장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정국은 그들에게 괴물로 여겨졌다. 그러나 지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지민은 처음 정국을 만났던 때를 기억했다.
펑 하는 소리가 나면서 한 층에 있던 사람들이 단번에 사라졌다. 주변의 공기를 압축시켜 물로 만든 다음 순간적으로 증발시켜 파괴력을 만드는 능력이었다. 유리창이 산산이 깨어지고 모든 전기가 나갔다. 정국은 이성을 잃은 채 힘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센티넬에게 힘은 한정되어 있고, 폭주하여 평소보다 더 빠르게 힘을 방출한다면 십 분 안에 모든 힘을 소진하고 자멸할 것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다만 그 십분동안 건물에 얼마나 더 많은 피해를 입힐까가 문제였다. 결국, 피해를 축소하기 위해 사살하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그러나 사살하는 것 조차도 어려움이 있었다. 과연 누가 폭주하는 S급 센티넬에게 갈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사살은 불가능한 말이었다. 따라서 그것도 수포로 돌아가고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대피시키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 때의 지민도 다른 사람들처럼 혼비백산한 상태로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중이었다. 앞으로 한 층만 더 내려가면 언제 자멸할지 모르는 센티넬의 위험 반경에서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민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센티넬이 괴로워하는 울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 살려줘요...제발...
무엇에 홀린 듯 지민은 도로 계단을 올라갔다. 폭주가 일어나고 있는 5층에 도달했을 때야 지민은 정신을 차렸다. 내가 어쩌자고 올라온 거지. 5층에 존재하고 있던 사람들도 싹 다 사라진 공간의 텅 빈 한가운데에는 폭주하고 있는 센티넬이 있었다. 자신에게는 저 센티넬을 달래줄 만한 능력이 없었다. 지민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리는 머리와는 다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센티넬이 폭주하고 있는 힘은 지민을 피해갔다.
지민은 멍한 눈동자로 고개를 뒤로 꺾은 채 괴로워하는 어린 센티넬을 내려다보았다. 그 애의 굳게 닫긴 두 눈에서는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지민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느꼈는지 그가 입을 열었다.
'가요, 제발 가,요. 내가 당신 죽일지도 몰라요...'
그 애는 그의 힘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잠시 지켜보던 지민은, 손을 천천히 뻗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자 감겨있던 눈이 살며시 떠진다. 폭주로 인해 푸르게 빛나는 두 눈. 그러나 지민은 놀라지 않고 대답했다.
'아니, 너 나 못 죽일 거야.'
지민이 말을 끝마치자마자 순식간에 폭주가 사그라들었다. 지민은 푹 하고 앞으로 쓰러지려는 몸을 붙들었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센티넬의 얼굴을 확인한 지민은 자신이 그 유명한 센티넬의 가이드란 것을 직감으로 깨달았다.
"난 유독 걔가 불쌍해."
들리는 말에 지민은 회상에서 깨어나 태형을 돌아보았다. 지민의 눈빛에 태형이 씁쓸한 미소를 짓고서는 말을 이었다. 센티넬들이 다 안타깝긴 하지만 걔는 더 그래. 각성할 때 가족을 죽여버리고, 기관에 와서도 알맞은 가이드를 찾지 못해서 애꿎은 가이드 4명을 저세상으로 보내버렸잖아. 그 중에 한 명은 정국이가 엄청 좋아했다는 사람이었고.
"아무리 사고라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제가 죽였으니 어린애 속이 얼마나 엉망진창이었겠어."
* *
태형과 헤어지고 난 다음 지민은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휴게실로 들어왔다. 정국의 전담 가이드가 된 것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래도 처음 정국을 봤을 때 우는 얼굴이 너무나 인상에 남아서 평소 가이드를 하던 때와는 달리 잘 해줘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마음과는 다르게 정국은 거리를 두는 눈치였다.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자기는 정국아 하고 편하게 부르더라도 정국은 자신에게 꼬박꼬박 존대를 쓰는 게 그 증거였다. 아 머리 아파. 사람을 대하는 건 어렵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형."
지민은 감았던 눈을 떴다. 정국이 절 바라보고 있었다. 지민은 정국이 왔단 걸 확인하자마자 누워있던 몸을 바로 일으켰다. 어, 왜. 뭐 부탁할 거 있어? 머리 아파? 지민은 제가 그에 대한 문제로 고민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밝게 물었다. 그러나 뒤이어 나오는 말에 미소가 사라지고 말았다.
"형, 저 좋아하죠."
직구였다. 정국은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제게, 날 좋아하느냐 묻고 있었다. 지민은 순간 대답할 말을 잊어버렸다. 지민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주먹을 쥐는 것 뿐이었다. 마음을 들켰다는 걸 보이는 증거로.
정국의 시선이 지민의 손에 잠시 닿았다가 떨어졌다. 형. 정국의 입술이 열리며 말이 튀어나왔다.
"저 좋아하면 안 돼요."
"왜?"
저도 모르게 말이 툭 튀어나갔다. 그러나 정국은 전혀 놀라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저는 주위에 있는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어요. 그게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예외는 아니었죠."
"나는..."
"형은 아니라는 말 하지 말아요. 나는 무서워요, 내 힘이. 내 힘은 계속 커져요. 몰랐죠 그건. 내 힘은 파장이 맞은 가이드를 만나면 더 세지고 진화해요."
"........"
"그래서 나는 형이 나와 파장이 맞아 전담 가이드를 하겠다고 말했을 때도 웃지 못했어요."
정국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힘이 진화하면, 진화해서 만일 파장이 바뀌기라고 하면, 형을... 정국이 입술을 악물었다. 그리고 침묵 끝에 말을 뱉었다. 차라리...
"그때 오지 말지."
"........"
"그 때, 나 죽게 놔두지."
정국은 울고 있었다. 지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지정 전력 <너, 나 좋아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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