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 맨날 음침함을 뿜어내는 게, 재수없지 않냐. 들리는 소문으로는 신내림 받았다던데. 레알? 소문이라니까, 등신아. 진짜인지 구라인지는 모른다고. 그럼 가서 물어볼까? 너 신내림 받았냐? 하고. 미친놈, 그러다 진짜면 어떡할래. 자기 신한테 쫑알대서 너한테도 신내림 내려달라고 하면 그날로 니 인생은 좆되는 거야. 낄낄거리는 목소리들. 교실 안을 오가는 대화들이 시끄럽다. 구석에 엎드려 있는 전정국을 힐끔대며 숙덕이는 말들은 이제 익숙했다. 나는 손을 놀려 아직 한 문제가 남은 수학 숙제를 마저 풀고 있었다. 아주 쉬운, 머리를 조금만 굴리면 답이 나오는 그런 문제. 아 배고파. 매점 갈래?
"고?"
교과서 윗부분을 가볍게 치는 동작에 고개를 들었다. 같이 가자는 눈빛이다. 때마침 문제를 다 푼 참이었기에 정답에 동그라미를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포함한 너뎃 명이 매점에 가려 교실을 나서는 순간까지도 전정국은 엎드린 자세를 고수하고 있었다. 아마도 거의 하루 종일 저렇게 지낼 거다. 차분하다 못해 침울해보이기까지 하는 검은 머리카락에서 눈을 떼고 문을 닫았다.
허기에 잠시 중단됐던 대화는 계단을 내려가며 다시 이어졌다. 주제는 똑같다. 전정국. 누구도 소문의 진실을 확인하려 들지는 못했다.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다 들리게끔 수군거려도 가서 말 하나 못 붙이는 게, 뒤에서 눈치를 주고 무리에서 제외시켜도 직접적으로 괴롭히지는 못하는 게 다 그 이유 때문이다. 말을 섞었다가 자신들에게 불똥이 튈 까봐. 재수없게 신병에 걸려 같은 꼴이 날까봐.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신내림을 받았다고 하잖냐, 라는 말은 진실이다. 어떻게 알고 있냐면,
전정국과 나는 같은 집에 사는 가족이니까.
균열
처음부터 나와 사이가 안 좋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지. 섞이지 못하고 숨만 쉬고 있던 그 애에게 다가가서 말을 걸고, 손을 내밀고 웃어주었던 건 모두 나였으니까. 조용히 밥만 먹고 일어나 자기 방으로 들어가던 애. 아직도 그 때의 모습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제 앞에 내밀어진 손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뜨던 모습이.
정국이는 내가 열여섯일 때 가족이 됐다. 나에게 부모님은 모두 친부와 친모이지만, 정국이에게는 친부와 양어머니다. 그러나 생김새를 자세히 뜯어봐도 내 아버지와 닮은 구석은 조금도 없었다. 그렇다면 필시 그의 어머니를 똑 닮았을 것이리라. 나는 귀 너머로 지금의 가정은 아버지의 재혼으로 생겼다고 듣긴 했으나 체감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태어났을 때부터 주욱 평화로웠으니까. 한 명의 어머니와 한 명의 아버지. 아버지의 전 아내인, 정국이의 어머니에게 일이 생기지만 않았어도 난 죽을 때까지 체감한 적이 없었을 거다. 그러다 어느 날, 목이 말라서 일어났다가 심각한 대화를 주고받는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엿들은 시간만 해도 20분에 달했고 다 듣지 않고 방으로 돌아갔기에 실제로는 한 시간 정도를 이야기하셨을 거다. 들은 내용을 축약하자면 이러했다.
이혼한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그녀의 아들은 홀로 남겨졌고, 보살펴 줄 친척들은 아무도 없다고. 홀로 남은 아들은 이혼하기 전에 자신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라고.
근심 가득한 표정으로 한숨을 뱉는 아버지를 보던 어머니는 그랬다.
- 데려와요. 아이가 안됐잖아요.
라고. 아무리 이혼한 사이라 하더라도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아이를 키우자고 선뜻 말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데려오자고 안 했겠지.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아버지를 정말 많이 사랑하셨고, 또 홀로 남은 가엾은 아이를 불쌍하게 여길 줄 아는 동정심이 있었다. 어머니라는 장벽을 넘고 나자 남은 건 나라는 장벽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갑자기 타인을 가족으로 데려온다고 하면 분명히 바락바락 악을 쓰고 반대를 하겠지. 아버지는 그리 예상했겠지만 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형제가 생긴다는 사실이 좋아서. 외동으로 태어났기에 가끔 외로움을 탔었다. 친구들은 형이랑 혹은 동생이랑 놀고 싸우기도 하는데 나는 그럴 상대가 없지 않았는가. 그래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아버지의 등 뒤에서 나타난 애는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막연하게 아버지를 닮아 쌍커풀이 없고 눈은 가로로 길게 찢어졌으며, 피부는 조금 까무잡잡할 거라고 생각했다. 완전히 반대였다. 얼굴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큰 눈과 자리잡은 쌍커풀, 아주 희어 백지같은 피부톤. 아버지의 피가 반이 섞여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그 애와 거리를 두었던 게.
정국이는 우리들을 어려워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모두를. 아버지이기는 하나 그 애도 그때 제 친아비를 처음 봤을 거였다. 처음 보는 아버지에, 그 처음 보는 아버지의 아내와 아들. 낯설고 불편했는지 말 한마디를 떼지 않았다. 잘못한 거였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그 애를 데려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결론지었고 굳이 과도한 친절을 베푸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에는 데려온 의무감으로라도 불편한 건 없는지, 괜찮은지 대화를 시도하려 했으나 단답으로만 끝나는 반응을 보고 더 이상 관심을 주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나자 우리 집은 네 명이 살고 있었으나 이전처럼 세 명이 살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네 명이 앉아서 식사를 했으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에게만 반찬을 집어주고 질문을 던졌다. 정국이는, 그냥, 공기였던 거다. 나도 그 애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만나기 전까지 머릿속으로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아직 클 테니 위로해주고 적응하기 힘들 테니 내가 도와줘야지!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나랑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반은 같은 피가 흐른다는 형제라는 사실이 너무 이상해서.
위층 난간에 몸을 기대어 거실을 가로지르는 정국이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혼자 책 읽고, 혼자 숙제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마음이 바뀐 건 하나 때문이었다. 나는 과일을 먹으면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고 정국이는 앞쪽에 앉아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위층에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린 때가 있었는데, 숙제를 하다 말고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가만히 올려다보는 표정이 너무 외롭고 슬퍼 보여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저 애는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는 걸. 그래, 누구도 외면받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특히나 어린 나이에는 더 그렇다. 그래서 나는 손을 내밀었다. 깜짝 놀라 커진 눈으로 내 얼굴과 손을 번갈아보던 그 애.
시간이 지나자 정국이와 나는 아주 가까워졌다. 등하교를 같이 하고, 방과 후에 피씨방에 같이 놀러가기도 하고. 정국이는 게임을 아주 잘했다. 열을 쏟지 않고 뒤에만 있어도 정국이가 적들을 다 해치우곤 했다. 너 이런 앤 줄 몰랐어. 그네를 휘감아 아무도 못 타게 만들어 버리는 모습을 보며 그랬다. 뭐가? 맨 위의 철근까지 그네를 묶는 데 성공한 정국이는 물었다.
'처음에는 완전 조용하고, 응, 그랬잖아. 지금은...'
'딴판이다?'
'맞아.'
뭐가 그리 웃긴지 허리까지 굽히며 웃어대던 정국이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물 위에 하얀 물감을 톡, 던져놓은 듯 주변을 빠르게 적셔나가던 순수한 웃음.
'그래서 싫어?'
싫을 리가 있나. 나는 웃음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때 이미 정국이는 나에게 있어서 가장 친한 친구이자 형제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수없이 감사했다. 정국이를 데려와줘서 감사해요, 라고. 물론 사이가 완화되어도 부모님은 나를 훨씬 더, 많이 챙기긴 했지만. 나와 함께 있어 매일 웃는 정국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이 애는 괜찮다고. 부모님 대신 내가 더 많이 정국이를 챙기고, 사랑해줄 테니까 괜찮다고. 외롭지 않을 거라고.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같은 대학교에도 붙고, 그렇게 계속... 부족한 사랑을 내가 채워줄 수 있을 거라고.
오만이었다.
균열은 2년이 지나지 않은 시기에 찾아왔다. 일주일 전부터 나는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땅에 끌릴 정도로 긴 칼을 든 할아버지가 나를 의자에 꽁꽁 묶어두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쉴새없이 중얼거리는 꿈. 제대로 잠을 자지도 못한 덕분에 눈가에는 피곤한 기색이 짙어져만 갔다. 할아버지가 칼을 들고 쫓아온다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되묻는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근데 요새는 더 이상해졌어. 한자들이 공중에서 막 춤을 춰. 그러다가 내 눈앞을 새카맣게 뒤덮으면 잠을 깨는데, 너무 피곤해.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아. 심각한 정국이의 얼굴을 보다 하품을 한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별 거 아닐거야, 가자.
하지만 꿈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주일 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몰려오는 졸음을 애써 깨려고 노력하며 계단을 내려오려던 나는 그대로 쓰러졌다. 쿠당탕, 하고 울려 퍼지는 큰 소리에 어머니가 달려왔고 그 이후의 기억은 내게 정확하지 않다. 온 몸이 펄펄 끓고, 매우 아팠으며, 수많은 귀신들이 보였다. 그리고 가운데에 서 있는 긴 칼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 하나. 직감했다. 꿈에서의 할아버지구나. 어떤 약을 써도 증세는 호전되질 않았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의사들을 끊임없이 불렀으나 그들은 이유를 모르겠다며 당황하기만 했다. 나는 열에 취해 뿌옇게 보이는 시야 사이로 날 쳐다보는 할아버지 귀신을 응시했다. 귀를 울리는 웅장하고 위엄있는 목소리. 그만 거부하고 받아들여라.
내가 앓는 병은 신병이었다. 갈 곳이 없어져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무당에게 찾아간 부모님은 병명을 알았다. 그렇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신내림을 받으면 신을 섬기는 무속인이 되어야 하지만, 신내림을 거부하면 죽을 수도 있다고. 두 개의 선택지 모두 최악이었다. 나의 손을 붙잡고 하염없이 우시던 부모님. 왜 하필이면 나냐고 한탄을 하셨지만 나는 체념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귀신을 받들지 않으면 죽음이라니. 차라리 귀신을 모시더라도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신내림을 누가 대신 받는다거나 할 순 없나요?'
어머니는 무당에게 물었다. 무당은 고개를 저었다. 말 그대로 한 사람을 신이 선택한 건데, 다른 사람이 대신 받는게 말이 안 된다고. 결국 사흘 뒤 신내림을 받기 위해 굿을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부모님은 나를 잃을 순 없었던 거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여전히 내려가지 않는 열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나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정국아. 퍼석한 입술을 비집고 나오는 목소리는 내 목소리가 아닌 것만 같았다. ...많이 아파? 내 앞까지 온 정국이를 올려다보았다. 떨리는 손이 뼈가 선명하게 드러난 내 손등을 만졌다.
'내일이면 끝나.'
'...응.'
무언가를 더 말하려던 입술은 다물리더니 이내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민아,... 내 이름을 부르는 말에 무슨 의미가 들어있는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았다. 괜히 죄책감 갖지 말랬지. 아무도 낫게 할 수 없다니까. 그리고 알잖아, 내가 선택한 거야. 내일이면 내 인생은 조금 달라지겠지만 그래도 너랑 같이 살 수 있을 테니까. 왜 이 말을 하면서 목이 메였을까. 눈물이 차오른 정국이의 얼굴을 보자 울컥했다. 그래서 신병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내내 생각해왔던 말을 내뱉었다. 난, 다행이야.
'네가 아니라 나였어서, 정말...다행이야.'
그 말에 펑펑 울던 정국이는 내 속마음을 알았을까. 고백한다. 나는 정국이를 좋아해버렸다. 동일한 피가 반이나 흐르는 형제인 걸 알고 있는데도,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도 가슴으로는 달리 여겼나보다. 닮은 구석은 하나도 없어서, 완전한 타인이라고 생각해 버렸나 보다. 그래서 아파 죽을 것 같은데도 정국이는 멀쩡한 사실에 안도했었나 보다. 나는 네가 다른 사람을 만나 그 사람에게서 충분한 사랑을 받을 때까지 사랑을 주고 싶었다. 너도 내가 주는 사랑에 충분히 행복해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끄러운 방울 소리는 그친 지 오래였고, 진득한 향 만이 코 속을 파고들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납덩이처럼 무겁던 몸이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가뿐하고 상쾌한 느낌에 눈을 뜨자 무당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끝난 건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야, 달라진 게 없네. 수많은 귀신들과 할아버지 귀신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신이 내 몸에 들어왔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빨리 할 걸 그랬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던 나는 더 이상 웃지 못했다. 정국이를 다정하게 잡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보였기에. 고맙다, 정국아. 두 마디로 상황을 파악했다. 전정국이 나 대신 신내림을 받았다는 걸.
전정국이 신내림을 대신 받자 그날부로 부모님의 태도는 달라졌다. 웃어주었으며, 잘 챙겨주기 시작했다. 후에 제대로 무속인이 되기 전의 임시방편으로 방 한 켠에 신당을 만들어주었고, 또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 대신 자신의 인생을 바친 아이에 대한 감사함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나는... 부모님의 관심과 애정을 받아 행복하게 웃고 있는 전정국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대신한 이유가 그거였구나.
부모님께 따스함을 받고 싶어서.
둘이 같이 찍었던 사진을 엎어뜨렸다.
* *
반에서 나와 전정국이 가족이라는 걸 아는 애들은 아무도 없다. 그건 우리들이 밖에서 단 한마디도 섞지 않을 뿐더러 성조차도 다르기 때문이다. 전정국과 부모님의 사이는 좋아졌지만 반비례로 나와는 멀어지게 됐다. 말을 끊은 건 내 쪽이었다. 나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올라치면 내가 자리를 떠났다. 방문도 닫고 잠가버렸다. 어떻게라도 말을 걸려고 애쓰던 전정국은 반 년이 지나자 완전히 포기했다. 부모님 앞에서는 여전히 웃지만 돌아서면 웃음기가 사라지는 걸 알고 있다. 신당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였지만 달래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애한테 내 속마음을 말했지만 짓밟았으니까. 먼저 손을 내민 건 난데... 다른 사람의 사랑을 더 원하고 있었으니까. 실은 몇 번이고 물어보고 싶었다.
왜 대신 신내림을 받았어? 그렇게까지 부모님의 눈길을 얻고 싶었어?
가라앉은 눈으로 문이 닫힌 신당을 바라보았다. 저 안에 들어가서 뭐를 할까. 신에게 기도를 할까, 향을 피우고 절을 할까. 신을 대신 받은 경우는 원래 신을 모셨어야 할 자가 아니기에 신의 사랑이 그다지 따르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영험도 본래 받았어야 할 주인보다 적고, 가끔 아프기도 하고 그런다고. 등교 이후 내내 엎드려 있는 게 증거였다. 애석하게도 난, 아직도... 정국이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내가 받았어야 할 신을 다시 돌릴 수 있을 방법은 없을까.
지금 집엔 나를 제외하고서 아무도 없었다. 나는 천천히 신당 앞으로 걸어가 문고리에 손을 댔다. 그리고, 돌렸다. 돌리자 눈 앞에 나타난 광경은 이질적이기 그지없었다. 부적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고, 도금으로 만든 상이 여러 개 놓여 있고. 시뻘건 벽지로 도배된 방에 섬뜩한 기분까지 들었다. 잔뜩 배인 향 냄새까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후 손을 휘둘러 신당 안을 닥치는 대로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불상을 바닥으로 내리쳐 찌그러뜨리고, 부적을 다 찢고, 금줄들을 다 잘라버리고, 벽지를 뜯어내고. 짤그랑 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이상한 사진들이 넣어져 있는 미니 액자들도 다 바닥에 내리쳤다. 방울들을 찌그러진 상으로 쾅쾅 부수고 있을 때, 막 돌아온 전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굳어 있던 전정국은 다음 순간 황급히 들어서며 날 말리기 시작했다. 그만 해! 나는 듣지 않고 몸을 돌려 시뻘건 벽지를 떼기 위해 성큼성큼 걸었다.
"뭐하는 거야!"
말리려는 듯 팔을 붙잡아왔지만 아랑곳 않았다. 몸싸움이 벌어졌다. 나는 남은 신당을 아예 다 부숴버리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었고, 전정국은 거의 다 부숴졌지만 조금이라도 사수하려 있는 힘껏 날 말리고 있는 광경. 이렇게까지 말리는 이유가 뭐냐고. 누르고 눌러왔던 무언가가 단번에 폭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전정국의 멱살을 붙잡고 벽으로 밀어붙였다. 한 쪽 다리를 끼워넣어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키고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왜 말리는 거야, 왜!!
"신이 노할까 두려워? 내가 부쉈으니까 나만 아프겠지! 아니면 이 곳이 없어지면 부모님의 사랑도 없어질까 두려워? 그래서 그래?"
말들이 이리저리 쏟아져나왔다. 전정국은 흔들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 눈빛에 더 화가 났다. 눈에 힘을 주지 않으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몇 달 만에 가까이 대면하는 얼굴일까. 화를 내는 순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정국은 멱살을 쥔 내 손을 풀기 위해 손을 들어올려 붙잡았으나 이어진 내 말에 힘을 주지는 못했다. 너에게 말해줬잖아. 다행이었다고! 네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그리 말했잖아, 내가! 그 날 말하지 못한 게 그거였어? 그래서 울었어? 널 동정해줘서 고맙지만, 난 부모님의 사랑을 더 원한다고?!
"왜 대신 받았어, 왜!!!"
피를 토해내듯이 외쳤다. 결국 눈가에 주었던 힘이 풀리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왜 네 인생을 자진해서 망친 거냐고... 이 바보야... 잔뜩 상처주는 말들을 해버렸지만 하고 싶었던 말은 그거였다. 왜 그깟 이유 때문에 네 앞길을 막은 거냐고. 그러나 다음 순간 흘러나오는 말에 손에서 힘이 빠졌다.
"너..."
"........"
"너 구하고 싶어서........"
정국이는 울먹거리며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너 구하고 싶어서 그랬어... 힘없이 내려간 손 끝이 가리킨 건 아까 부술 때 미처 깨지지 않았던 작은 액자였다. 정국이와 나, 단 둘이 환하게 웃으며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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